속이 빈 석고상들/ 2014.01.28
근처에 미술학원이 있었나. 아니, 내가 본 것은 수험생을 위한 기숙학원이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부모입니다." 끔찍해, 동생이 혀를 찼다. 함부로 버려진 물건들은 늘 나를 동요시킨다. 눈 코 입이 없을 때조차도 그것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표정을 보여준다. 삼 년 전 서촌을 걷다 삼 인의 아그리파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검은 눈물이 점점 투명해지면서 단상 위에 괴고 쏟아내려갈 때까지는, 기다리지 않았다. 단지 그 인물의 네모진 턱과 뺨의 윤곽이 눈물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 얼굴 위에서 눈물은 좀 더 오래 머무른다. 며칠 전 본 것은 머리가 뚫리고 껍질처럼 바스라져 부식되어가는 일군의 석고상들. 비너스. 헬레네. 쥴리앙. 쥴리아노. 말라붙은 눈물은 이들을 지나치게 비감 어린 모습으로 만든다. 지나친 것들을 지나쳐 간다. 마그리트 풍의 단정한 초현실에서는 지각되지 않는 그림자들.
대뇌 적출 수술. (* 헬레네에게서 미 아닌 지혜를 빼내가려 손을 쓰는 이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가능해. 남들이 그녀의 콧등만 바라보고 눈이 멀어 있을 때 재빨리 머리를 쪼개어 그것을 훔쳤지.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아무 것도 새로 태어나지 않더군. 도끼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가시면류관 따위로 이교도의 목을 조르는 바보 같은 짓은 제발, 하지 말아요.)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김행숙, 「이별의 능력」
"랄랄라 나는 너만 보호하네, 너는 천사의 그런 속삭임을 듣고 싶다." -김행숙, 「유령 간호사」
굽어보는 쥴리앙님. 당신의 머리칼은 냉동고에 넣은 생크림 푸딩 같다. 묘지까지는 길이 멀단다. 그가 화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