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의 역사/ 문화의 맥락과 유기체적 사회: 프란츠 보아스, 에밀 뒤르켐
2주차 에세이 (3/17) 문화의 맥락과 유기체적 사회: 프란츠 보아스, 에밀 뒤르켐
1858년에 태어난 동갑내기 학자 보아스와 뒤르켐은 인류학의 창시 단계에서 전방위적인 학문적 업적을 보였다. 보아스는 젊은 시절 지리학과 물리학을 동시에 공부했는데, 이누이트 족 등, 서구 유럽과 상당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여러 민족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수행한 현지조사로 이후 미국문화인류학의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그는 형질인류학자로서 강단에 섰으며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무의미함을 과학적 조사로 밝혀냈다. 『사이언스』지와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는 한편 언어학 연구에 많은 공헌을 한 학자이기도 하다. 뒤르켐의 경우 초기 학계에서 그의 영향을 프랑스 내에 국한된 것으로 폄하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사회’ 개념을 통해 종교와 국가의 기원, 사회적 복합성의 발달 과정 등 인류학의 핵심적인 연구주제들을 밝혀내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뒤르켐의 인류학 선구자로서의 입지는 사회학에서의 그것에 견주어도 크게 모자라지 않다.
영향력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로, 둘의 사상적 경향은 큰 차이가 있다. 특수한 환경적 맥락 안에서의 문화 형성과정에 관심을 보인 보아스의 연구가 점차 이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반면, 자연현상과 구분되는 사회의 영역을 가정해 그 보편적인 ‘진화’의 양상을 주장한 뒤르켐의 연구는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을 도출해내는 이론적인 연구였던 것이다. 이 두 학자들의 업적을 함께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나는 학문의 발달 과정이 상이한 입장들의 경합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변증법적인 생각을 한 번 더 되새기게 된다. 전파주의적 관점이 각각의 문화, 민족, 장소 사이에서 물질적/비물질적인 사물이 전달되는 과정을 중시함으로써 고전적 진화론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은 인간의 문화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상호보완적 관점으로서 양자의 통합을 유도한 것 역시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
다른 사회들의 단선적 분류에 반대하는 보아스의 상대주의적 관점은 인간의 역사 발전이라는 통시적 주제에 골몰했던 인류학으로 하여금 보다 공시적인 방향에 눈을 돌리고, 한 사회의 통합적 총체(integrated whole)로서의 문화를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자고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그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가. 궂은 환경에서 장기간의 현지조사를 마다치 않고 각 문화의 특수성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그에 미친 환경의 작용을 규명하려 한 보아스의 연구방식은 감동적인 구석이 있다. 발달한 서구사회의 시민으로서 문화가 발상하는 초기 단계를 알아보기 위해 ‘원시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히는 뒤르켐의 에누리 없는 입장이 부단한 오해에 부딪혔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뒤르켐이 현지조사에 소홀했던 것 또한 그를 인류학자로서 인정하지 않게 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식’으로서 전수되는 ‘문화’보다는 ‘사회’자체에 관심을 가졌던 인류학의 한 사상적 경향에서 뒤르켐을 제끼는 것은 부당한 평가가 될 것이다.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와 유기적 연대(organic solidarity)라는 뒤르켐의 개념은 한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개인의 자율성이 증대하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의존성 역시 강화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설득력 있게 분석해냈다. 수렵 채집 등 모두가 동일한 일에 종사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은 동질적이지만 누구든 고립되어 살아갈 수도 있다. 법이 제정되고 각자가 다른 영역에서 일하며 시장에서 노동의 산물을 구입해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개인의 특성과 사고가 두드러지지만 그 개인은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아가기 어렵다. 뒤르켐은 이런 사회, 특히 도시의 구성을 신체 각 기관이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개체로서 발달하면서 다른 기관에 의존하는 것에 비유해 유기적(organic)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하나로 묶기 위해 계약과 시장 외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요소로서 언급된 것이 집합의식(conscience collective)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인식의 과정과 시도, 그 결과로서 알려진 대상을 통틀어 말하는 몹시 미묘한 개념이라고 하는데, 일단 이해한 수준에서 간략히 정리하려고 한다.
기계적 연대의 사회에서 집합의식은 개인을 장악하지만, 유기적 사회에서의 집합의식은 개인의 도전을 끊임없이 받는 가치 교류의 장이다. 종교 역시 집합의식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데, 하나의 완성된 교리로서 종교의 역할은 한 사회의 성격이 유기적 연대로 옮아올수록 줄어들게 된다. 뒤르켐은 정치, 경제, 과학적 기능이 종교적 기능에서 분리되어 스스로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사회 내에서 종교의 중요성을 말했고,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한 종교라는 기존의 관점 대신 사회 속에서 성과 속을 분리해내는 종교의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유기체라는 말의 사용이 한 사회의 통합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역할을 경시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지만, 뒤르켐은 한 사회의 발전을 다양성이 늘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인간 존재 역시 다양한 추세를 보이며 그 고유성을 갖게 된다고 보았다. 개인과 사회를 명료히 구분하고, 문화적 지식의 사회적 근거를 밝혀낸 것이 사회과학 영역에서 뒤르켐의 최대공헌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