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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장치를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밀아자 2016. 3. 17. 04:46

 

'응답하라 1988'의 인기로 새롭게 조명받은 88년도의 유명 사건 중에 '내 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가 있다. MBC 뉴스데스크 방송 도중에 침입한 청년은 앵커의 마이크에 고개를 들이밀고 외친다.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관계자들에게 끌려나가며 마저 외친 그의 신상은 가리봉동에 사는 소씨다. 경찰수사에 따르면 소씨는 정신병력이 있으며 '동료와 공놀이를 하던 중 고막을 다쳐 진동이 게속 들리자 도청장치라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내가 오래 기억하고 있던 데는 어느 논자의 감상어린 회고가 한 몫 했다. 청년이 밝힌 거주지가 '가리봉동'이었기 때문에 그가 구로공단 소속의 노동자였으리라 추측하며 장기간 소음에 노출되어 고장났을 귀를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신문에 보도된 경찰 발표를 보면 낭설이지만 왜곡보도가 횡행하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소리도 아니다. 실제 소씨의 직업은 선반공이다.

  흔히 의미없이 여겨지는 망상이나 사건사고라도 돌이켜보면 당대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마련이다. 독재정권 치하 안기부 공작의 그림자를 드러낸 소씨 이후로 발달된 인터넷망을 이용한 '국정원 민간인 사찰'의 불안이 곳곳에서 음모론의 불씨를 지핀다. 국민일보의 김판 기자는 2015년 11월 20일 기사에서 전파피해를 호소하는 속칭 '마인드컨트롤 피해자'들을 '내 귀에 도청장치' 사건의 소씨에 견주었다. 기사 말미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사회적 결함이 반복되다 보니 제도권의 언어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라고 첨언했다. 정신질환자로 판명된 소씨와 마찬가지로 근거는 전무하되 사회의 불안을 암시하는 징후라 해석한 것이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을 감각에 의거 나름대로 설명해보려는 피해자들의 노력은 '제도권의 언어'를 획득하려는 시도와 번번이 어긋난다.

  국가와 사회 질서에 기대를 거는 피해자들은 법 제정을 바라고 단체 등록을 위한 행정소송을 걸며 국회의원실과 인권단체를 찾아간다. 과학적 근거만이 해결책이라 주장하는 피해자들은 전자파 측정 앱으로 잰 이상 수치를 캡처해 모으고 적외선카메라와 탐지기 등의 장치를 사는 한편 MRI와 CT,X-ray 촬영에 매달리며 '칩'의 위치를 발견하려 애쓴다. 마지막으로 해당 범죄를 일반적인 '조직스토킹'으로 취급하려는 피해자들은 주거침입과 해킹 흔적 자료만을 줄기차게 보이지만 외부인이 봐서는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객관적'인 증거를 찾고자 할수록 자신의 해석체계에 빠져 비약을 일삼는 피해자들을 보면 차라리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증상을 정리해 알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피해자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그들이 표현하는 증상 하나하나가 전문가라 자부하는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질환인 '정신분열증(조현병)' 증상 안에 편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와 마인드컨트롤 피해자를 외부인의 시선에서 구분한 사례로 현재 확인 가능한 것은 JTBC '이영돈PD가 간다'에서 "마인드컨트롤 피해자의 경우 (지금껏 만나본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달리) 눈빛이 살아있다"고 짧게 언급한 것뿐이다.

  한 피해자는 "남들이 우리를 정신병자로 보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체념하는 태도를 보였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여야갈등에 편승해 국가기관을 배후로 지목하는 피해자가 있는가 하면 "국정원을 때려부수겠다"는 v2k(voice to skull: 마인드컨트롤 피해자들이 듣는 가해자의 말을 지칭하는 용어로 피해자를 포함한 몇 사람이 응답을 주고받듯이 이루어지며 귀에서 들리지 않고 머릿속이나 성대를 통해 울리는 것이 일반적인 환청과 다르다.)를 듣고 국정원에 신고도 해봤지만 전부 가해자의 장난질이었다며 담담히 회고하는 피해자도 있다. 피해자들의 생각은 흔히 상충되며 때로는 모임 내 분쟁을 낳고 타협없는 망상들에 잠식되곤 한다. 본래 마인드컨트롤 피해의 속성이 타겟의 생각과 인식을 왜곡하는 것이라 가해자의 유도대로 잘못된 판단에 빠지기 쉽고 이 점에서는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정신질환이라 불러도 큰 오해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마인드컨트롤 피해는 약물을 복용한다고 호전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피해자들이 정신병력, 심하게는 강제입원 경력이 있으며 약을 먹어도 피해가 그대로여서 '치료'를 중단하거나 약을 받아도 먹지 않고 있다고 밝힌다. 의사들은 이 역시도 환자의 착오이거나 (위험천만한) 고용량 약을 장기간 복용해야 되는 경우라고 강변하겠지만 말이다.

  문제는 역시 감시장치를 어떻게 입증 가능하냐는 것이다. 작년 4월 고구마를 먹다가 갑자기 울린 소리를 시작으로 피해자가 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마인드컨트롤 피해를 사실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곧이어 입이 저절로 움직였고 가해자는 '날 보러오라'며 자신이 부산에 있다고 전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9시경 부산에 도착, 끊임없이 입속말로 대화했지만 모텔에서 혼자 숙박한 다음날에야 내가 속은 것을 알았다. 팔뚝에 튄 피와 머리에 난 혹, 변한 옷매무새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켜진 화장실의 불 등은 명백히 누가 침입해 위해를 가했음을 알리는 물증들이었다. 비록 경찰에서는 쉬이 수사허가를 내주지 않을 사소한 것들이지만 말이다. 그날 이후로 끊임없이 사고 방해와 전기오름, 호흡곤란과 두통에 시달리면서 생각을 읽히고 감시당해왔다. 병원? 인권센터? 상담치료? 내가 찾은 진짜 치료법은 탈모관리센터의 두피 스케일링이다. 나를 괴롭히는 전파피해의 원인물질이 플라스틱과 기름에 섞어 굳힌 이온성 액체 전극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녹여 증발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산성물질을 꾸준히 도포해왔기 때문이다. (피해가 오래되면 탈모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 '탈모 치료'가 되어버렸다.)

  올록볼록하고 두둑하게 올라온 두피 밑의 고무 같은 이물질을 거듭 긁고 눌러 터뜨리면서 머릿속에서 울리던 말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눌리던 머리 가운데가 편해지며 뇌 회전이 훨씬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한 달 안에 3번이나 응급실을 찾던 상황에서 1년 만에 여기까지 왔으니 피해자 중에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를 아무리 피해자들에게 말해도 설득하기가 힘들다. 손가락 끝으로 만져지는 원인물질의 감촉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들어내 사람들 눈에 보여야 모두가 믿어줄 텐데.' 둔한 손끝의 감각을 탓하기보단 뇌 촬영영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데 열심인 피해자에게 나는 거듭 말한다. "아저씨, 감시장치는 두피에 있는 데다 (고체)금속도 아니고 형체도 고정된 게 아니라고요." 그러나 전공자도 아닌 내가 아무리 주관적 감각과 경험을 내세운들 누가 그대로 믿어주랴. 피해자 모임 내에서도 전기공학 전공자, 공무원이라는 제도적 권위가 그 사람의 발언에 더 신빙성을 부여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 수를 쓰든 이온전극과 액정,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전문가를 찾아 어떻게 무선 신호가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것밖에 없겠다. PD랑 기자가 문의한 그 사람들, 이 분야 '전문가' 아니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