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na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Creepy, 2016) _구로사와 기요시

밀아자 2016. 8. 22. 01:27

 

구로사와 기요시는 <큐어>에서 고립되어 있던 불안이 누군가의 개입을 통해 발화되는 현상을 묘사하고자 했다. 19년 후의 신작 <크리피>는 바로 이 지점을 반복한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악의 정체를 사이코패스로 제시하면서 악의 전염성이란 주제는 축소된 느낌이다. 악이 자리 잡고 영향력을 끼치는 장소는 가족과 그들이 사는 집 안으로 한정된다. 동시에 전작 <밝은 미래><도쿄 소나타>에서 탐구되어온 가족 해체 현상 및 대안적 결합의 가능성이 이 영화에서 전도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소녀는 왜 아버지 행세를 하는 살인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나? 아내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남편의 의지를 거스르는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원인들의 뒤편에 가족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중산층 가정의 역할 구획 아래서 표면적인 평화가 차츰 흔들릴 조짐을 보인다.


사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기대의 배반을 다루고 있다. 첫 시퀀스는 형사였던 다카쿠라가 왜 경찰을 그만두고 범죄심리학 교수가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과거 장면이다. 사이코패스인 연쇄살인범에게도 나름의 모럴(윤리)이 존재한다는 다카쿠라의 믿음은 범인이 이송되기 전 벌이는 인질극 앞에서 여지없이 조롱당한다. 결말에서는 피해자들이 저항하지 못할 거라는 가정 파탄범니시노의 믿음이 이에 대응하며 느닷없는 충격으로 이어진다. 총성이 울리고 한쪽은 웃음을, 한쪽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파탄난 가족의 모습은 선명한 실체성을 획득한다. 사이코패스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범죄심리학자의 목소리는 기세등등하나, 경찰이라는 공권력 체제를 이탈한 존재로서 그는 몇 번이나 무력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어긋남은 십대 소녀였을 당시 일가족 실종 사건에서 홀로 남겨져 생존한 사키와의 만남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애당초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사키와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다카쿠라이지만, 사키의 회상이 자신의 의심과 맞아떨어지면서 그의 태도는 경찰의 취조만큼이나 강압적으로 치닫는다. 경찰로서 용의자 신상을 조회하거나 영장을 발부할 수 없는 그는 유일한 참고인인 사키에게 집착하다가, 정작 사건의 진상을 발견했을 때 모든 외부의 도움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이다. 이후 니시노의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은 지금까지 인물들의 관계에서 발생해왔던 미묘한 긴장감을 어두컴컴한 지하실 속 살인마의 얼굴로 전환시키며 장르영화로서 명쾌한 방향성을 취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이코패스 스릴러라기에 니시노의 캐릭터는 독특하다.


영화 속에서 니시노의 내면을 알기 어렵다는 것을 그가 사이코패스라는 뜻으로 치환할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어떻게 보면 니시노는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의 불신과 그 틈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형상화하고자 만들어진 기능적 인물에 가깝다. 그는 거리낌 없이 피해자들을 이용하지만 직접 폭력을 행하는 것은 꺼린다. ‘손을 더럽히기 싫으니 네 가족의 문제를 네가 해결하라.’고 말하며 총기를 넘기는가 하면, 자신과 피해자들을 통틀어 가족이라 칭하며 미래의 계획을 (마치 아버지처럼) 이야기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범죄현장에 다다른 다카쿠라는 사이코패스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데, 이 장면 직후 예상치 못한 개입(일종의 배반)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범인을 악하고 불쌍한 병자로 취급하면서 정작 자신의 과오는 돌아보지 않는 오만을 지적한 부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하다기에는 어딘가 꺼림칙하고, 이상하다기에는 아무래도 친숙한 범인. 다카쿠라의 아내인 주부 와스코는 그와 만날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다가가기를 계속한다. 결렬되고 마는 다카쿠라-사키의 관계와는 대조적으로 와스코는 타인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의 극단에 가닿으며 비극의 문을 열어젖힌다. 이웃과 친해지는 과정이 결국 범죄의 타깃이 되는 과정이 되어버렸으니 그 노력을 비난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와스코가 아니었다면 옆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범죄가 밝혀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가족 내부에 있다. 갈등의 원인을 추론하는 역할을 관객에게 맡기며 영화는 퍽 암울한 결론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