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Like You Know It All, 2008) _홍상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는 홍상수 감독이 여타 영화들에서 다뤘던 한국 남성의 콤플렉스가 연달아 등장한다. 영화계 사람들의 허세와 유명인을 향한 질투심, 외국인과 영어로 말할 때 갖게 되는 묘한 긴장감 등. 물론 가장 적나라한 것은 남녀관계다. 영화감독 구경남의 일정을 따라가는 영화의 줄거리는 우연적이지만 만나는 여자마다 구경남에게 면박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다. 각각의 만남들을 이어주는 계기는 역시나 술자리다. 여자들과 함께 술을 마신 후 구경남은 영문도 모른 채 두 번이나 파렴치범으로 몰리고 만다.
나름대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책임감도 유창한 말솜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그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 자리를 뜨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황급히 짐을 싸들고 초청받은 제천영화제를 떠나왔다가, 이번에는 제주도의 대학에 특강을 가서 선배인 양천수 화백의 재혼 소식을 듣는다. 상대는 자신이 옛날에 좋아했던 후배 고순이다. 제주도 방문에서 구경남이 고순과의 밀회를 계획하기 전까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구경남과 양천수의 예술론이 나온다. 이는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예술관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전한 장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비록 그 내용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들어갈 것’으로 요약되는 일종의 변명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것이 최선일까? 적어도 사람 간의 관계에서 이런 자세는 크나큰 착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래요?” 해변에서 고순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는 충격을 느낀 사람이 구경남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름대로 ‘구경만’ 하고 있다가도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스캔들에 덜미 잡히던 참인데, 모처럼 자신이 나서는 한방을 시도했다가 구경 당하는 신세가 되어 봉변에 처했다. 구경남은 젊지만 명망있는 원로 화가인 양천수에게 힘으로도 상대가 못 되는 것 같다. 갈등의 상황을 보정 없이 다룬 이 영화에서 우리는 주인공의 찌질함에 혀를 찰 수도, 안 풀리는 그에게 이입해 안타까워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구경남은 여행자이고 객지에선 누구든 실수하기 마련이니까, 비졸한 행동에 킬킬대며 웃다가도 어느 순간 내 모습이 비쳐서 뜨끔할지도 모를 일이다.
**2015년 씨네꼼 홍상수영화제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