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La Cérémonie, 1995) _클로드 샤브롤
클로드 샤브롤은 <의식>을 두고 “마지막 마르크시즘 영화”라는 농담을 했다. 그의 여타 영화들처럼 여기서 발생하는 살인은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집중하도록 묘사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댈 수 있는 답은 계급 갈등이다. 응징되는 것은 통조림 공장과 화랑을 운영하는 부르주아 가정의 위선이며, 해고된 하녀와 공모하는 우체국직원은 부르주아 가정을 향한 선망과 계급적 적의를 숨기지 않는다. 루스 렌들의 원작 소설은 하녀가 글을 몰랐기 때문에 고용주 일가를 죽였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하녀는 자신이 문맹인 것을 감추기 위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피하고, 비밀이 탄로나자 상대의 비밀을 빌미로 협박하며 바로 그 행동 때문에 해고된다. 살인은 그 후에 일어난다.
문맹은 고용주 가족과의 경제적인 계약관계를 넘어 소외계층으로서 하녀의 지위를 드러내는 사회적 지표이다. 샤브롤은 하녀의 비밀을 문두에 얹는 대신 극을 진행하면서 드러내 보이고, 그를 통해 소피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의 내면으로 관객을 잡아끈다. 그러나 영화 내내 음악과 화면의 배치는 이상한 긴장감을 유도하며 결코 주인공을 동정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냉정함은 샤브롤의 카메라뿐 아니라 소피를 연기한 상드린느 보네르의 것이기도 하다. <의식>의 오프닝 시퀀스는 고용주인 캐서린 릴리브르가 하녀직에 지원한 소피를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소피는 당당하고 자신에 차 있으며 흔들림 없는 무표정으로 캐서린을 대한다. 시골의 외딴 저택에 들어가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요리와 청소 등 각종 일처리에도 능숙하다. 그녀가 불안감을 노출하는 것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글자들에 마주쳤을 때뿐이다. 비밀은 금방 탄로 날 듯도 하나 일정 정도 이상으로는 개입하려 들지 않는 가족들의 무심함 덕분에 제법 오래 유지된다.
감정적 절제와 냉정함은 본래 부르주아 계급의 미덕이다. 하녀의 냉정함은 이례적이고, 캐서린은 소피의 성격을 가리켜 ‘이상하다’고 말한다. 릴리브르 가족은 독서와 예술을 사랑하는 교양 있는 상류층으로서 소피에게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고자 하지만, 하녀를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소모품처럼 취급하며 소피의 주말일정을 미리 들었음에도 자신들이 연 파티에 참가할 것을 우선시한다. 시내에 나갈 수 있도록 운전 교육을 받게 해 주겠다 제의하고 눈이 나쁘다며 거절하는 소피에게 안경을 맞춰줄 정도로 넉넉한 씀씀이를 갖춘 반면, 하녀가 외지인이기에 친구를 집에 불러들이지 않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기심도 가지고 있다. 하녀가 우체국에서 일하는 잔느와 친해진 후 함께 TV를 보기 위해 잔느를 방에 초대하자 가족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TV는 이 영화에서 도드라지는 문화적 상징물로서 사람과 사람, 혹은 공간과 사람을 매개한다. 관객은 릴리브르 저택이 나오는 첫 장면부터 새로 온 TV를 거실에 설치하는 가족들의 흥분어린 미소를 보게 된다. 또한 소피가 안내받은 하녀 방 안에는 밀려난 구형 TV가 정면에 놓여있다. 오자마자 켠 TV에서는 요란한 음악과 함께 한 문구가 떠오른다. ‘오직 인간만이 정의로울 수 있다.’ 글을 몰라 뜻을 읽을 수 없는 소피는 인간의 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그토록 태연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TV를 통해 집안에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를 불러들이는 릴리브르 가족의 교양은 글 모르는 소피의 적의 앞에서 산산 조각난다. 일이 끝난 후 서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소피의 모습은 이 살인이 부르주아의 문화자본을 쳐부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사살과도 같다. 릴리브르 가족의 딸인 멜린다는 소피의 방에 구형 TV를 놓는 것이 ‘그 여자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고 힐난하지만, 소피는 과히 몰입하기보다는 분명한 거리를 유지한 채 TV를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피에게 TV는 세상을 향한 창구라기보다는 이웃 잔느와의 관계를 가깝게 하는 도구이다.
만사에 무관심한 소피에 비해 잔느는 세상의 온갖 기록들과 아직 기록되지 않은 비밀들에 관심이 많다. 독서와 시를 좋아하는 잔느는 시골의 호화 저택인 릴리브르 가를 무언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곳이라며 궁금해 한다. 그녀는 릴리브르 가족이 각자 전 결혼에서 얻은 아이를 데리고 온 재혼 가정이며 전처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알 만큼 사생활에 빠삭하다. 이러한 정보는 릴리브르 가로 오는 우편물을 우체국 근무 시간에 몰래 뜯어본 데서 습득한 것일 수 있다. 캐서린의 남편인 조르주 릴리브르가 유독 잔느를 싫어하는 것은 그녀가 우체국에 온 이후로 우편물들이 개봉된 흔적이 있는 채로 배달되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반감은 그가 읽은 기사 때문에 더욱 커진다. 기사는 잔느가 화상 입은 자기 아기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아기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 기소되었으나 증거부족으로 풀려났다는 내용이다. 릴리브르 가족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잔느이지만 그녀가 소피의 비밀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대신에 그들은 서로에 대한 기록을 공유한다. 잔느의 아이가 화상으로 죽었듯이, 소피의 중병을 앓는 아버지는 집에 홀로 있을 때 원인 모를 화재로 죽었다. 증거는 남지 않았지만 잔느와 소피에 대한 의심은 남아 있다. 이 사실은 소피가 잔느의 집에 놀러갔을 때 잔느가 보관해둔 신문에서 확인되며, 공범으로서 둘의 연대의식을 확립시켜주는 공통점이 된다.
소피가 릴리브르 가족을 살해한 직접적인 계기가 멜린다의 임신 사실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멜린다는 어릴 적부터 피임 교육을 받았지만 임신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날 거라고 염려한다. 소피는 전화로 이 사실을 엿듣고, 멜린다에게 문맹임을 들키자 임신사실을 밝히겠다며 협박한다. 결국 멜린다는 아버지에게 고백하지만 그녀의 임신은 너무나 쉽게 용서된다. 불똥은 대신 하녀에게로 튄다. 전부터 소피에게 불만이 있었던 릴리브르에게 협박 사건은 하녀를 해고할 적합한 빌미가 된다. 멜린다를 임신시킨 남자친구는 영국에 유학 중이며 릴리브르 가족의 파티에 초대되었고 멜린다와 계속 함께할 것을 약속한다. 중절을 하든 아기를 낳든 온전히 멜린다의 자유라는 말도 덧붙인다. 잔느가 아기를 가졌을 때 남자가 떠나고 별수없이 미혼모가 되어야 했던 것과 딴판이다. 소피에게서 멜린다의 임신 소식을 들은 잔느는 어차피 그들에게는 낳든 안 낳든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부는 사회적 일탈로부터 안전하게 개인을 보호해주는 방어벽이다. 잔느의 말을 빌리자면 상류 계층의 삶에는 어떤 물건을 고르느냐 정도 외에는 고민이 없다. 그러나 소피와 잔느의 범죄를 하층 계급의 정당한 반란으로 보는 것은 둘의 범죄가 완전범죄로 남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부적절한 감상이 된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명백한 범죄는 대개 예측하지 못한 기록을 남긴다. 소피와 잔느가 소외계층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죄가 탕감되는 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샤브롤이 계급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