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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테마파크

밀아자 2018. 1. 16. 12:26

친밀감과 성적 긴장감에 대한 꿈들은 가장 기억나지 않는 종류의 것들이다. 고등학교였는지 중학교였는지 한때 급우의 이름을 들은 것만이 얼핏 생각난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보여주고 있었다. "당신의 몸을 원하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앞에도 문장이 더 있었는데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건 이것뿐이다. 그때 내 몸은 파란색이었다. 이런 몸을 누가 원할까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피부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고 파란 물감을 입힌 것이어서 샤워를 하니 물감이 죽죽 찢겼다. 물감이 찢어진 데서 얼룩덜룩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나는 몇 명의 사람들과 지역에 고립된 특수병원을 방문하던 참이었다. 현재까지의 의료 기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실험적인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고도 여겨졌는데 영문 모르게도 잠시 백혈병이란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사실 이 병원은 가망이 없어진 무연고 환자를 쉽게 파쇄해 죽이는 도살장 같은 곳이었다. 죽음에 처한 환자의 살점이 찢기는 장면을 보았다. 이런 조치를 허용해도 좋은지 갑론을박을 벌이는 듯한 순간이 있었다. 애초에 국민과 소비자의 시선에서 벗어난 탈법적 의료시설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말을 누군가 했다. 이상하게도 이것이 허가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의식도 없고 가망 없는 환자를 계속 살게 내버려두는 게 과연 인도적이냐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안락사라기에 그 장면은 너무 잔인했고, 더구나 시체들은 정육 처리되어 몰래 병원 수용자들의 식사로 쓰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병원을 답사하면서 입구에 거대한 틈이 있는 것을 보았다. 틈 사이로 보이는 깊이는 인간이 딱 무서움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뛰어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마다 사람을 건너편으로 보내주기 위한 승강기가 도착했다. 내가 올라갔을 때 그것은 방석 같은 모양이었고 푹신했다. 공기압 때문에 그것을 꼭 움켜쥐고 엎드려야만 했다. 방문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병원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일단 지나간 후에 그 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우 얕아져 얼마든지 걸어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변했다.

지하실에서 도축된 고기들이 배열된 것을 보았다. 긴 살점이 털없는 원숭이의 꼬리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빗 보위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것처럼 길고 매끈한 꼬리를 가진 털 없는 원숭이-인간 둘이 부둥켜안고 있는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알고 보니 수용된 환자들은 단지 도살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형태를 밝히는 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가망 없어진 환자들은 그 실험의 결과물 중 일부였을지도 몰랐다. 환자든 원숭이든 폐기된 실험체가 고기로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닥터 모로의 섬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외할머니댁에 갔다가 이 층 방의 텔레비전을 켜고 그 영화의 오프닝을 보았다. 초록색의 배경 위에 각기 다른 모양의 외눈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영상으로 기억한다. 오프닝은 다 보았지만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어릴 때 이런 식으로 퍼뜩 놀라 텔레비전을 끈 적이 이거 말고도 네 번 있다. 첫 번째는 나디아에서 기계인간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해당 애니메이션을 챙겨보지 않아서 맥락은 알 수 없었지만 "너도 이제 어엿한 기계인간이다. 코드를 빼면 움직일 수 없지."라고 말하는 악역에 맞서 기계인간이 초자연적 의지로 움직이고, 그 결과 박살이 나서 해골 모양의 부품들로 분해되는 부분이었다. 두 번째는 슈퍼 그랑죠에서 제롬(라비)이 세뇌된 채 다이치를 향해 걸어오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의 스틸컷을 나중에 다시 찾아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의상이 그랬는데 어쩌면 한국 방송사에서 가필을 했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는 가요 방송에서 "프리스타일 랩교"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는 그룹. 여러 명의 그들은 복서들이 쓰는 것 같은 후드 달린 긴 가운(이런 옷을 복서들이 입는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 정보다.)을 입고 종교행사를 집행하는 것처럼 무대 위를 돌고 있었다. 이 노래도 나중에 찾아봤고 제목이 <랩교>라는 걸 알았는데 별 감흥은 없었다. 네 번째는 요리왕 비룡에서 어둠의 요리사들이 나오는 장면으로 흡사 무협만화와 같은 포스를 뿜었다. 이때는 좀 "이걸 계속 봐야하나?" 싶은 느낌으로 껐던 것 같다. 다른 때만큼 무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쨌든 기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악몽은 포근하다. 내가 처음 가위에 눌렸던 중학교 때부터 항상 그랬다. 악몽은 나를 깨고 싶지 않게 만든다. 실은 나는 악몽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는다. 꿈 자체보다는 그것을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 더 답답하게 느껴지기에. 나는 아침에 복기해본 내용을 위주로 이 일기를 쓰지만 내가 부러 기억한 내용들이 꿈의 가장 에센셜한 부분은 아닌 것 같다. 꿈에서 깬 후 "너는 내가 얼마나 무서운 남자인지 몰라." 하는 말을 들었다. 그게 누구인지를 맞춰보려 애썼다. 확신은 아직도 불가능하다. 그를 대체로 PJH나 LIY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최근에는 LJH라고 하기도 했다. 꿈에서 그렇게 적힌 신분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름을 다른 곳에서도 발견한 후에는 꿈에 과한 신빙성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굉장히 어릴적부터 나와 함께 있었고 내가 겪은 온갖 괴이한 기분과 상상들의 원흉이라고 할 만하다. 이를테면 전봇대가 나를 강간-실험하는 것 같은. (그때 나는 여덟 살이었고 강간당한다는 인식은 당연히 없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말할 때도 실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인지 M은 그걸 강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좋아했다는 말을 제3자의 시점으로 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를 변태라고 인정했다. 흉폭하게 굴기를 즐기는 일빠 오타쿠인 남자다. 그는 작년 이후로 질린 것인지 BDSM의 상징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라면 스테레오타입의 사도마조히즘을 좋아하는 것은 원래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파워 트위터리안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관련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나를 지배했던 성적 망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들은 몽땅 생체실험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것은 평범한 일빠 오타쿠 남성의 감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90년대 말은 지금보다 훨씬 음습한 시대였다. 나는 음습하다는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한 단어로 일축하지 않고 제대로 옮길 수 있는 언어를 알지 못할 뿐이다. 바로 앞의 문장은 내가 LHY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것이다. 그는 이따금 다정한 문장들을 불러준다. 그때면 이상할 만치 행복한 기분이 엄습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라고 믿었던 부분들은 대체로 그의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상할 만한 다행감은 내가 그의 말들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도 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느껴진다. 어제도 잠을 못 이루다 그의 말을 듣고 안도감을 느꼈다. 이게 LHY이지, 생각하고, 부자연스럽게 양손으로 이마를 탁 잡았다. 사랑해, 라는 말을 두 번인가 들었다. 이런 말들 후에 약간씩 간지러운 기분을 느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진짜 같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신물난다는 듯이 아우성치는 것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