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트레인>은 멤피스의 변두리 호텔과 길거리를 배경으로 한 연작 형식의 영화다. 짐 자무쉬는 이 영화를 찍기 전에 멤피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이 자신을 그 장소로 인도했으며, 도시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자무쉬가 의도적으로 환기시키는 낯섦의 정서는 여행객과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세 에피소드의 내용과도 잘 어울린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동일한 장소 혹은 사물(예컨대 자동차)이 시점을 바꾸어 반복 포착되곤 하는데, 이때 관객은 한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50년대 팝스타의 자취로부터 도시에 대한 기억을 만들고 호출해낸다. 영화에서 주된 사건이 일어나는 호텔의 모든 객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빨간 옷을 입은 흑인 지배인과 고전적인 모자를 쓴 흑인 벨보이 단둘이 일하고 있는 이 호텔에는 TV가 없다. 조금씩 다르게 모사된 엘비스의 초상은 ‘TV도 없는’ 허름한 방에 유일한 광채를 주는 미국 팝 문화의 아날로그 모방품이다.
첫 에피소드 FAR FROM YOKOHAMA는 50년대 미국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인 커플의 이야기다. 기차를 탄 채 등장한 그들은 소형 플레이어에 이어폰 두 개를 꼽아 함께 음악을 듣는 중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커플이 듣는 노래를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함께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적극적인 영화적 개입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음악을 다룬 영화치고 <미스테리 트레인> 전반에는 영화 외적인 음악의 삽입이 드물다. 음악들은 인물의 경험 속에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묘사되며,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새벽에 듣는 라디오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문’을 세 번 반복해 들려줌으로써 동시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를 집약시킨다.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개의 에피소드는 같은 날 멤피스에서 한 호텔에 투숙한 사람들이 벌인 사건을 다루며, 가장 외부자의 시선에서 출발해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간다.
영어에 서툰 일본인 커플에게 멤피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칼 퍼킨스가 활동한 장소로 재구성된다. 엘비스가 더 좋은지 칼 퍼킨스가 더 좋은지를 두고 투닥거리는 커플의 취향은 확고하지만 여행 계획은 퍽 느슨하다. 다짜고짜 걸어 나간 길에서 그들은 원래 먼저 가려던 그레이스 랜드 대신 선 스튜디오에 도착하고 안내자의 빠른 설명을 곤란하게 들어 넘긴다. 50년대 음악의 자취를 좇는 이 답사에서 순례자들은 그 시대와 장소를 직접 향유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막 성년을 맞이하는 나이다. 엘비스를 ‘왕(king)’이라 부르는 쿠도 유키는 엘비스의 생전 사진을 다른 유명인이나 역사적 인물과 비교하는 행위로 여행의 첫 밤을 기념하는데, 이질적인 것들의 접합은 일본인의 신체에 과장된 하위문화의 의장을 걸친 관광객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THE GHOST는 도시 전체에 드리워진 엘비스의 후광을 이탈리아에서 온 여자가 멤피스 사람들과 마주치며 겪는 어색한 순간들로부터 잡아낸다.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잡지를 사들이고 모르는 남자와 마주앉아 대화하는 등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지만 끝내는 지친다. 밤에 그녀는 일본인 커플이 묵은 곳과 같은 호텔을 발견하고 객실을 찾지 못한 낯선 여자와 함께 묵는 호의를 베푼다. 낯선 여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빠와 전 남자친구가 세 번째 에피소드 LOST IN UNIVERSE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며, 그들이 일으킨 범죄는 호텔에 소동을 일으킨다. 같은 장소에 묵는 인연을 공유했지만 얼굴도 모르던 인물들은 영화 마지막에 우연히 기차 안에서 조우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서로를 모르는 채이다. 이 영화는 처음과 끝에 모두 기차 장면이 등장해 수미상관을 이룬다. ‘미스테리 트레인’은 엘비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인물들을 이끌어주는 장소의 이름으로도 분명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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