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컬 걸은 개념을 입는다
-대학 축제 의상 논란과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 사이에서 대학 페미니즘의 과제를 짚다
(2014년 겨울 <연세> 102호에 실림.)
** 이 글은 뇌 해킹 피해로 유실되어 복구하였습니다.
1 티피컬 걸
티피컬 걸(Typical Girl)은 누구인가. 티피컬 걸은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존재. 티피컬 걸은 마법에 걸린다. 지옥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티피컬 걸은 예민하고 감정에 잘 치우친다. 쉽게 화를 내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 티피컬 걸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비논리적인데다가 행동이 빤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잔인하고, 또 사람을 호리곤 한다. 이런 티피컬 걸을 우리는 특히 팜므파탈이라고 부른다.
티피컬 걸은 잡지를 산다. 티피컬 걸은 뾰루지와 군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염려한다. 티피컬 걸에게서는 멋이 넘쳐흐른다. 그런 티피컬 걸에게는 기댈 남자가 있다. 티피컬 걸은 이들 앞에서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할 줄 안다. 티피컬 걸은 반항 따윈 하지 않는다. 대신에 더 티피컬 걸다워지기 위해 애를 쓴다. 누가 티피컬 걸을 창조했는가? 1979년 데뷔한 영국의 펑크 록 밴드 더 슬리츠(The Slits)가 물었다.
앞서 적은 내용은 더 슬리츠의 첫 싱글 곡 <Typical Girls>의 가사를 번역해 재구성한 것이다. 당신은 티피컬 걸을 본 적 있는가? 또는, 당신은 저 중 몇 가지에 해당되는가? 이쯤에서 당신은 고개를 흔들며 저런 편견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옳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난 반세기 간 페미니즘이 남긴 유산의 참된 상속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티피컬 걸이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아리 업(Ari Up, 더 슬리츠의 보컬)이 자문했듯이, 티피컬 걸의 모델은 언제나 새롭게 갱신되고 있기 때문에.
2 90년대의 게릴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머리칼이 흐트러질 때까지 되는대로 몸을 움직이다가 무대를 노려보며 찢어지는 음색을 내는 여자들의 공연 영상은 한눈에 반항적인 인상을 준다. 단순하고 무성의한 곡 구성,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과 과격한 무대매너를 내세운 펑크의 DIY 정신은 일군의 여성 뮤지션들을 무대로 불러들였고, 90년대 미국에서 이를 계승한 소위 ‘라이엇 걸(Riot grrl)’들은 인습에 저항하는 노래와 애티튜드로 페미니즘을 변주하는 문화운동의 분위기 조성에 일조했다. 바야흐로 ‘세 번째 물결(third-wave feminism)’ 1의 시작이었다. 일상의 문제가 저항 담론 안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개인의 실천이 즉각 정치적 발언으로 읽히며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시기 페미니스트를 자칭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 아녔다. “그녀가 걷는 곳에 혁명이 오고 있어.” 2라는 의기양양한 외침은 분명 그 시절의 열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 최신 유행 페미니즘의 영향력은 미국 안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신세대 담론이 한창이던 1995년 한국의 대학가, 성정치 문화제를 개최한 연세대 총학생회는 ‘날 강간하라(Rape Me)’는 너바나(Nirvana) 3의 노래 제목을 슬로건 삼고 페미니스트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표어와 이미지를 콜라주한 걸개그림 4을 학생회관에 내거는 등 90년대 미국 페미니즘의 아이콘을 전면에 보여주었다. 파격적인 아이콘을 가져온 것에 비해 전시물 자체의 수위는 얌전해 (낙태의 권리가 아니라) 피임도구를 전시하고 (성노동과 포르노의 자유를 주장하는 대신) 성 역할을 규정짓는 제도와 권력을 비판하는 데 머물렀지만, 당시 성적 보수주의자들과 언론매체의 집중포화는 상당했다. 특히 이성애 가족 제도 밖의 성을 비정상으로 몰아내는 성적 규범에 대한 비판과, 그 연장선상에 놓인 문제로서 성소수자 동아리 출범과 함께 대학가에서 처음 공론화된 동성애자 인권은 기독교 세력의 반발을 샀다.
성정치 문화제는 이듬해 보수 성향 총학생회의 당선 요인으로 지목되었고 5 섣부른 진행 탓에 동성애자 문제를 “혼란스러운 할로윈 쇼의 주범” 6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에도 부딪혔으나, 결과적으로 각 대학 페미니즘 운동의 전범(典範)이 되어 성정치 문제를 제기하는 ‘영 페미니스트’들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당시 대학 내 여학생 비율이 늘어나면서 학생회에서 소외되어온 여대생을 대변했던 총여학생회의 정체성에도 변모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전까지 대학의 총여학생회는 여학생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지니면서도, 여학생의 역할이 후방에 한정되는 현실에 수긍하면서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남성중심의 학생운동에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것이 준엄한 시대의 의무였기에, 총여학생회는 북한여성사진전 7을 열어 통일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고, 학생운동의 (남성)희생자들을 기념했으며, 구속된 (남성)동지들의 옥바라지를 하고 여학생들을 소집해 털목도리와 털장갑을 짜서 보냈다. 8
90년대는 흔히 ‘좋았던 시절’로 회상된다. 하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이 시기는 황금기라기 전에 우선 해빙기라고 부름이 바람직하다. 90년대의 변화가 유독 급진적으로 기억되는 것은 바로 전 정치적 암흑기의 문화적 빈곤과 떼어놓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질문이 유효했던 시절이었다.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1992)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가 음란문서 유포 혐의를 쓰고 판매금지 조치되었다.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됐던 사회의 경직이 누그러지면서 튀어나온 성 해방의 언설은 시대의 승기를 잡기 위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필요로 했다. 성 해방이 단순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억압적이고 획일화된 사회를 향한 저항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자면 페미니즘 조류와 손을 잡는 것이 아귀에 맞았다.
양귀자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2)로 한국사회의 성차별주의를 정면에서 다룬 이후, 최영미, 공지영, 신경숙 등의 젊은 여성작가들이 잇따라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들의 글에 드러난 페미니즘 색채가 또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참이었다. 당시 몇 안 되는 커리어 우먼 여성논객으로 이름을 알린 전여옥 역시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1995)라는 에세이집을 펴내어 ‘문화 게릴라’ 9들과 페미니즘의 연대에 한몫을 얹었다. 페미니즘은 교육받은 인텔리 여성의 신문물로 여겨졌고 문화혁명을 부르짖던 남성들에게는 동업의 대상으로, 여성들(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비로소 여대생들이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각 대학의 총여학생회 제도를 기반 삼거나 학생회 틀 밖에서 별도의 모임을 꾸려 활동해온 10 영 페미니스트들은 의욕적으로 이슈파이팅에 나섰다. 성추행·성희롱을 포함한 광의의 성폭력 11 개념을 기반으로 반성폭력운동을 펼쳤으며, 성인지(性認知)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월경을 긍정하고 생리 공결제를 제의하는 한편, 이성애중심주의 비판과 동성애자 인권운동, 존칭 폐지와 별칭 사용 문화, ‘안티 미스코리아’로 표상되는 성 상품화 비판 등 많은 논점들을 내놓았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성에 대한 규제를 거부하며 성을 사적인 영역에 위치시키는 성 해방의 논리와, 성적 실천을 정치적 행위로 생각하면서 성적 규범 자체가 사회의 지배논리로 구성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성정치 담론은 뿌리가 다르다. 대중에 보다 쉽게 호소한 것은 자유주의 분위기를 타고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전자였다. 금기에 저항하는 문화 게릴라 지망생들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페미니스트들의 저항 역시 사회적 소수자집단의 반차별 운동이 아니라 진보적인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되는 위기를 맞고 말았다. 펑크의 문화적 상징들이 패션잡지와 걸 그룹의 제스처에 흘러들었고 당당한 여성상은 여성 소비자의 잠재력을 발견한 자본의 상품으로 유통되었다. 이윽고 얼어붙은 경제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청년문화의 몸피를 위축시켰다. 젊은 세대에게 반항과 항쟁보다는 자기보전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퍼지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는 착실히 느는 듯 보였으나 그 자유를 공유할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가장 찬란한 자유의 매개가 돈이 되었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껴 돈을 벌어야 했다. 그 자유가 어디서 왔는지 따져보는 일은 무용하게만 여겨졌다.
여성이 넝마를 주워 입고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반체제적인 노래를 부르고 ‘다른 연애’를 꿈꾸는 것으로 ‘혁명’에 가담한다는 자의식을 가질 수 있던 때는 끝났다. 요컨대 페미니즘은 시대를 앞서가는 역할모델로서의 매혹을 잃었다. 봇물 터지듯 번역돼 나오던 성정치 담론은 어느 순간부터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명쾌한 용어로 대체되어 더 확장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취존(취향존중)’의 시대, 개인의 선택에 참견하는 것만큼 모양 빠지는 일도 없다. 양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페미니즘은 아직 한국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증명하는 일까지 과제로 짊어지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주된 투쟁대상은 성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보다는 사회·경제적 구조와 이를 지탱하는 법률적 제도로 옮겨갔다. 이천십 년 이후 한국의 여성운동은 크게는 성폭력 대응 운동과 여성 노동권 투쟁으로 양분되었고 12, 한편으로는 성소수자 운동의 외피 자리를 차지한 채 마을 공동체와 생태주의 등의 대안적 운동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 운동판에서 대학생의 존재감은 크게 줄었다.
성폭력 사건에 사후적으로 대항하는 동시에 권력관계 속의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법률 제정 운동에서는 일개인으로서 즉각적으로 상황을 개선시킬 방도가 없다. 이 때문에 지금의 반성폭력 운동과 여성 노동권 운동은 가담하는 이들에게 자긍심보다는 우선 극심한 피로와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과거 여대생이 고용관계와 결혼제도라는 권력 구조 밖의 자유인으로서 페미니즘 담론을 이끌어갔다면, 지금의 여대생은 무소속을 불안으로 받아들이며 남학생보다 훨씬 적은 기회 속에서 앞날을 준비해야 하는 심리적 약자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이 생물학적 성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속에 교묘히 가려져 있고, 노동하는 여성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가부장제 가족 이데올로기는 세대갈등으로 치환되어 대수롭지 않게 다뤄진다. 노동시장과 가족제도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다리가 되어주어야 할 정부는 육아 지원책 확충과 여성 고용 확대 등의 핵심 과제에 경제논리로 접근하며 본질적인 대책 마련을 미루고만 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취약한 지위가 성폭력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건만, 사건을 바라보는 남성들은 성폭력을 가해자의 인성문제로만 바라보며 비난을 퍼붓기 바쁘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태도로서 어떻게 여성성과 남성성을 활용해야 하는지를 설파한다. 이상적인 신붓감 상이 가사에 전념하는 현모양처에서 수입이 있는 여성으로 바뀐 시대이니만큼 여성의 일과 연애에 대한 강론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서도 여성성은 타고난 본성이라기보다는 연애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구사해볼 만한 가변적인 속성으로 취급된다. 이제 여성성과 남성성은 일종의 스펙이 되었다. 때려 부숴야 하는 규범이라기에 그 벽은 너무 얕아 보인다. 그러나 평범한 여성이 ‘여성성’을 발휘할 타이밍을 본인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 어디 가능키나 할까. 직급, 나이, 경력 등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남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성’을 강요하며 그를 빌미 삼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 여성이 사내 인맥에서 배제되고 발언권을 제한받는 탓에 업무능력을 저평가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는 것은 종종 무능과 나약의 증거로 읽히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일단 중요한 상황에서 용감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자각하고 ‘지사(志士) 페미니즘’에 나서줄 여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몸값을 시인하는 일은 종종 어마어마한 공포가 된다.
어느 시대에서건 티피컬 걸은 잘 팔린다. 어느 시대에서건 티피컬 보이는 티피컬 걸의 몫. 이들 선남선녀가 복작대며 살아가는 세상을 낙원으로 홍보하기 위해 그동안 동원돼온 전략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에는 자립적이고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상의 발굴 역시 포함된다. 티피컬 걸 모델의 교체 주기가 빨라지면서 얼핏 상반돼 보이는 가치들이 모호한 덩어리로 공존하는 경향은 더 커졌다. 오늘날에는 기꺼이 욕망을 표현하는 여성이야말로 티피컬 걸이다. 티피컬 걸의 욕망은 와인 잔의 우아함과 마카롱의 달콤함, 유럽 배낭여행의 자유와 반 고흐 전시회의 교양에, 그리고 보다 은밀한 곳에도 있다. 티피컬 걸은 속옷을 세트로 맞춰 입는다. BB크림을 바르고 ‘민낯’ 셀카 사진을 찍는다. 티피컬 걸의 몸매관리비법은 운동. 겨드랑이 털을 밀고 민소매 운동복을 입은 채 피트니스 센터로 가 러닝머신 위에 오른다. 티피컬 걸은 잘생긴 외국 운동선수에게 열광한다. 야구 규칙도 제대로 모르지만 데이트코스로 야구장에 가서 치맥을 먹으며 활짝 웃어줄 수 있다. 티피컬 걸의 주량은 소주 2잔. 술이 들어가면 혀가 꼬이고 애교가 는다. 짧은 치마를 입고 계단을 오를 때면 뒤를 가린다. 티피컬 걸의 꽁무니를 쫓는 남자들은 때가 무르익으면 살짝 목소리를 낮춰 귀엣말한다. ‘너 같은 여자를 만난 건 처음이야. 내 사랑을 받아주겠니.’
3 여자가 입는 옷이 그 여자를 말해준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유독 패셔니스타뿐 아니라 페미니스트에게서도 존경받는다. 일자 실루엣의 재킷, 무릎길이 스커트, 어깨 끈 달린 가방 등 편안하고 활동적인 디자인이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켰다는 공 때문이다. 코르셋이 성 억압의 상징으로 통하게 된 이후로도 여성의 복장과 몸은 페미니즘 담론의 부단한 싸움터였다.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해 인위적으로 ‘여성적인’ 차림새를 갖춘다는 것이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다. 60년대 말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제2의 코르셋’인 브래지어를 벗어 한데 모아 태우는 퍼포먼스를 꾸미기도 했다. 실제로 불을 붙이는 사례는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 ‘브라 태우기(Bra-Burning)’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과격성을 보여주는 악명 높은 사례로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오늘날 다수 여성이 여전히 브래지어 착용을 원하기야 하지만 여성의 옷에 대한 문제의식은 속옷 밖으로 나와 계속 그 흐름을 이어갔다.
2010년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는 ‘몸이 없어졌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여성제를 개최하면서 지배규범에 맞지 않아 ‘사라진 몸’을 드러내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밝혔다. 사라진 몸은 장애인이나 청소노동자의 몸, 성소수자의 몸 등 사회적 약자의 몸을 뜻했는데 여기서도 옷은 중요한 상징물로 쓰였다. 여성제 기획단은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었을 때와 여성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묻는 사진 작업을 전시했고, 헐렁헐렁한 옷을 입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지운 채 몸을 움직여보는 워크숍도 열었다. 대망의 마무리는 성별의 경계를 흐리는 ‘이상한’ 복장으로 중도 앞에서 춤을 추다가 일제히 그 자리에 쓰러지는 폐막 퍼포먼스였다. ‘곱게 죽을 수 없다’는 메시지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을지라도 이 퍼포먼스가 남긴 인상은 꽤 강렬했던 것 같다. 2012년 겨울 총여학생회 선거가 경선으로 치러지면서 세연넷 등의 게시판에 ‘중도 앞에 드러눕던 전 총여’를 향한 조롱 섞인 농담이 간간히 등장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축제라는 이름을 두르고 있음에도 억압과 저항을 형상화하는 여성제의 구상이 당시 학내 구성원들에게는 퍽 생경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당최 페미니스트라는 이들은 학기마다 축제가 열리는 캠퍼스에 다니면서도 청춘의 즐거움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던 걸까?
기실 연세대학교의 주류 축제인 대동제와 연고전은 페미니즘 운동의 오랜 비판대상이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응원과 FM의 전형적인 남성중심 문화, 상대편을 깎아내리면서 ‘명문대’ 의식을 되새기는 집단주의 문화는 소수자 감수성의 부족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아카라카 무대에 서는 걸그룹의 성적 대상화라든가 축제 기획 측의 상업주의, 과반행사에서 요리와 설거지 등이 ‘여성의 일’로 제한되는 성차별 또한 종종 지적되는 문제들이었다. 대학축제에 대한 비판은 곧 대학문화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과-반을 중심으로 한 ‘대학 문화’가 남성-고학번의 주도로 이어져 내려와 여학생의 발언권이 묵살되었으며 대학축제야말로 그 정수를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개선책의 하나로 캠퍼스 내 여학생 휴게실(이하 여휴)이 만들어졌으나 여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과-반방에 있는 여학생을 성애화하는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소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음에 따라 여휴의 정체성이 암묵적으로 여성 전용 수면실(겸 독서실)로 굳어졌고, ‘여성들 간의 대안적 문화 네트워크 공간’이라는 다른 편의 이상은 요원해졌다. 13
여학생 네트워크의 부재 현상과 관련해 하나 언급해둘 만한 것은 ‘개인주의’가 2000년대까지는 주로 여학생들의 특성으로 성별화되었다는 점이다. 한때 대학가 과-반을 중심으로 한 술자리 공동체, 흡연 공동체는 자리에 끼지 않는 이기적인 ‘학점귀신’ 혹은 ‘신자유주의적 주체’들을 손가락질하며 그들 다수가 여성임을 굳이 강조했다. 대학 공동체 문화가 남성 중심인 것은 여학생들의 참여도가 저조하기 때문이지 과-반문화를 이끌어가는 ‘인사이더’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에 대한 나름의 대항으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한데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들도 있었지만 공고한 남성연대를 깨지 못한 채 예외적인 개인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반면에 2010년대 이후 이런 성별화된 비난의 입지는 약해졌다. 학부제가 학과제로 바뀌고 신입생들이 국제캠퍼스에서 생활하면서 과-반문화의 뼈대가 흔들린 데다, 1학년 때부터 학점과 경력을 관리해 ‘스펙’을 쌓는 문화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과-반문화 참여를 꺼리는 것은 비단 여대생이 아니라 미래가 불안한 대학생이며, 여대생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사회적 약자로서 ‘위기’를 체감해오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연세대학교 여학생센터 전(前)소장이자 여성학 강의를 하고 있는 나임윤경 교수는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남녀공학 대학교의 학풍이 실은 군사문화와 성차별적 관행에 침윤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가부장적 이미지가 있는 여자대학교의 여학생들이 오히려 공적 영역에서 자신감 있는 태도를 드러낸다고 반례를 든 적이 있다. 14 그에 따르면 남녀공학의 여학생들은 행동 하나하나가 여성이라는 잣대에 비춰 평가되는 경험 중에 스스로가 ‘보이는 대상’임을 인지함으로써 일상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다. 논문에서 여대와 공학을 모두 다녀본 한 증언자는 가령 여대에서는 미니스커트를 입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공학에서는 무슨 일로 치마를 입었는지 계속 물어보며 자신의 옷차림을 시시콜콜 의미화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대의 학생들은 옷차림이 사회적으로 성별화, 성애화되는 패턴에서 정말 자유로운가? ‘여자가 입는 옷이 그 여자를 말해준다’는 소비사회의 표어는 기호소비의 환상이 수그러든 최근에도 여전히 몇 가지 뉘앙스를 보존하고 있다. TPO(Time, Place, Occasion)는 예의이며 그 외의 옷차림은 자기표현이라는 것, ‘싼 년’과 ‘비싼 여자’는 옷차림으로 식별된다는 것, 여성 비율이 높은 일자리일수록 복장을 엄하게 단속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등. 옷은 여성들의 필드에서 특히 더 맹위를 떨치는 룰이다.
9월 말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선정성을 이유로 축제 의상을 제한하면서 한바탕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웹자보 형태로 널리 퍼진 규정안은 망사 및 시스루 의상과 미니스커트, 핫팬츠, 크롭티 등의 노출이 많은 의상, 선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코스프레 의상 15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매기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이 총학생회의 방침이 강압적이라고 비판했고 심지어 이를 독재시대의 미니스커트 단속에 비겼다. 숙대 축제를 ‘꼰대’라 지칭한 『한겨레』의 기사 16로 논란은 더 불거졌다. 이 기사는 대학 축제 의상 규정안을 우리은행, 아시아나항공 등의 여직원 의상 규정과 비교하며 숙대 총학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을 강요하는 꼰대의 모습을 보인다고 평했다. 20대 여성들이 가부장제 규범을 내면화해 보수화되었다는 딴지일보 김어준의 우려 역시 유사한 맥락을 겨냥하고 있었다. 협소한 장소와 흐트러진 분위기 등 성추행·성희롱이 발생하기 쉬운 축제 주점의 특성은 이해하지만, 책임을 여성의 옷에 지워서는 안 된다며 ‘슬럿 워크(Slut walk)’ 17운동의 문제의식을 연관시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논쟁의 와중에서 정작 주목받지 못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첫째, 이 규정안은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및 자치단체 대표들의 협의로 마련되었으며 축제 부스에서 주점 등을 운영하는 학생 스태프들에게만 적용되었다. 18둘째, 논란이 점화된 곳은 세간에 ‘규수 양성소’로 알려진 명문 여대이며 적극적인 비판자는 대개 남성들이었다. 즉 이 논란은 오늘날 웹상에서 매우 빈번하게 볼 수 있는 ‘남성에 의한 여성 비난’의 형태를 빼닮고 있었다.
2014년 한국의 현재 시점에서 섹시한 여성을 도외시하며 ‘귀엽고’ ‘청순한’ 여성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구닥다리 같은 인상을 준다. 섹시 컨셉을 템플릿 삼는 걸그룹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모두가 당연한 듯 섹시한 복장과 태도를 권장한다. 본인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여성의 섹스어필을 공공연하게 가로막는 감시자들은 힘 빠진 ‘꼰대’나 ‘찌질이’, ‘추녀’의 위치로 추락했을 따름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특정 여성을 소유할 수 없다면 그녀의 섹시한 차림이라도 구경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국에 여성이 섹시하게 입을 권리를 옹호하지 않을 남성은 없다. 성녀/창녀 이분법은 마음속에서만 은밀히 작용한다. 성폭력의 가해자로 몰렸을 때에야 꽁꽁 숨겨둔 본심이 튀어나와 이중 잣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숙대 총학은 왜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의상 규제를 밀어붙여야 했을까. 이러한 결정에 ‘창녀’를 배제하는 것으로 학교 이미지 실추를 막으려 하는 가부장제 프레임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 개개인이 자기 뜻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축제라는 행사가 일반적으로 선후배 간의 권력관계 속에서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대학 축제의 주점은 다른 과-반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손님을 끌어오려 애쓰는 경쟁의 장이다. 특히 많은 또래 남성들이 찾는 여대 축제에서 ‘섹시코드’만큼 손님을 끌기 쉬운 수단도 없다. 여기서 섹시 컨셉으로 주점을 홍보하는 과-반 학생회 측의 주도에 맞춰 스태프들이 섹시한 의상으로 호객행위에 나서게 되는 맥락이 발생한다. 규정안이 없다고 해서 축제 주점에서 일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옷 입을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엇비슷한 시기 출판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과 비교하면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피해자 A씨는 정 직원 전환을 앞둔 술자리에서 오피스텔로 따라오라는 상무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성추행을 당했다.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린 이후 가해자는 사임했으나 대신 사외이사로 위촉되는 등 기만적인 조치가 이루어졌다. 지속적으로 불합리한 처우를 받은 A씨는 회사를 그만두면서 고소에 나섰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베스트셀러를 펴낸 유명 출판사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쌤앤파커스 측은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프리 허그를 하는 등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해 네티즌들의 빈축을 샀다. 수사 과정에서 몇몇 진술이 추가로 논란이 되었다. A씨가 17개월 동안이나 부당히 수습사원 직위에 머물렀으며 A씨 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직원들이 모두 드레스를 입고 참여한다는 사내 송년회 풍속도 도마 위에 올랐다. 소문인즉슨 회사 차원에서 여직원들에게 드레스를 입혀 각 테이블에 한 명씩 배치하고 상사와 저자들에게 접대를 강요한다는 것이었다. 쌤앤파커스 측이 완강히 부인했지만 송년회 당시의 플랜카드 사진 19이 웹상에 유출되는 등 혐의는 풀리지 않고 있다. 하필 이 회사의 대표가 여자라는 점은 성폭력이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구도 이전에 권력의 문제임을 방증한다.
‘간호사’ 코스프레 등 섹시코드를 전면에 배치하는 대학 축제 주점의 운영자들과 성추행 및 성접대를 용인하는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운영자들은 영리를 위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작금의 풍토를 공통점으로 보여준다. 맡은 업무와 관계없이 ‘여성스러움’으로 무장해야만 하는 데서 받는 압박을 개인적인 선택으로 입은 ‘야한 옷차림’과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를 왜곡시킬 뿐이다. 바꿔 말하자면 두 사건의 유사성은 사회의 성차별, 성 상품화 논리가 고스란히 대학 안에 전이되었다는 근거가 된다. 이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낀 숙대 총학생회가 학생대표들과 함께 자구책으로 마련한 것이 축제 의상 규정안이었으나,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규제로만 비치며 웃지못할 해프닝을 낳고 말았다. 페미니즘적인 논의가 선행되어 충분한 입장 발표가 곁들여졌더라면 반대 여론의 성격은 꽤 달라졌을 것이다. 20 오늘날 대학가에서 여성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페미니즘의 과열이 아니라 오히려 그 빈곤이다. 여대 학생들이라고 해서 평생 여성들로만 구성된 공적영역을 누릴 수는 없다는 딜레마 속,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권위적으로 조정하려던 숙대 총학생회의 노력은 급기야 ‘소비자’ 남성들의 엉뚱한 분노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4 총여학생회라는 입간판, 여대생이라는 이름표
앞서 나는 90년대의 전성기를 거쳐 위기론에 빠진 대학 페미니즘의 역사를 개괄하고, 대학 축제 의상 논란과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을 예시로 여성의 몸과 옷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비판해보려 했다. 물론 여기저기 빠진 부분이 많을 것이다. 대학 페미니즘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경향을 받아들이고 관심사를 넓혀왔으며 그 계보는 한 갈래로 꿰어 서술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우선 2000년대까지 ‘퀴어(queer)’ 21담론이 페미니즘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사실상 대학 페미니즘 운동의 주 유입경로가 된 퀴어 담론은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의 필요성 등 다수의 관련 논의를 촉발시켰다. 대학 페미니즘 교본으로 ‘행페’ 22와 ‘페도’ 23외에 ‘버틀러’ 24가 새로이 유통되면서 생물학적 여성의 문제를 넘어 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는 운동으로 대학 페미니즘의 외연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여성은 없다.”, “나는 여성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퀴어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여성이 아닌데 왜 총여학생회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 회의적인 반응을 낳으며 대학 페미니즘 운동을 고립시키는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 대학 페미니즘에 유입되었던 다른 조류로는 ‘에코 페미니즘’이 있다. 요지는 남성(‘인간’을 자칭하는)중심의 개발문명이 자연을 착취해온 역사를 돌아보고, 산업사회에서 평가 절하되는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며 상품에 의존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로 더불어 살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었다. 여성과 땅의 친연성을 암시했던 에코 페미니즘은 이따금 모성, 비폭력적 본성 등을 여성의 생래적 특성으로 말하기에 이르렀고, 여성성을 곧 소수자성(타자성)으로 봤던 퀴어 담론 분파와 아슬아슬한 동거를 이어갔다. 한편에서는 ‘성노동’ 프레임을 제기하며 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운동이 출현해 성매매를 일종의 성폭력으로 간주했던 주류 페미니즘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대학 페미니즘에 영향을 줄 만한 사회 정책적인 변화도 몇 있었다. 사전 피임약과 사후 피임약의 처방 기준이 뒤바뀌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란이 새삼 일었고, 대학 내 군사문화 확산의 주범으로 꼽혔던 ROTC 제도가 여학생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 페미니즘을 향한 주목도 자체가 너무 떨어진 터라, 부딪히는 경향들의 견해차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2011년 영 페미니스트 경향의 총여학생회가 여학생 복지를 강조한 ‘연세 호’ 선본에게 밀려난 후로 총여학생회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는데,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이 변화를 눈치 챘을 정도다.
최근 총여학생회는 그들이 제기한 이슈보다도 ‘폐지 논란’을 두고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출마 선본이 없을 정도로 여학생 당사자들의 관심이 저조한 총여학생회는 외부에 만만한 ‘학생회비 도둑’으로 비쳤고, 낸 만큼 받고 싶은 일부 남학생들의 소비자 심리가 총여학생회는 구시대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물고 나와 논란에 불을 붙였다. 총여 무용론의 심리적 배후는 역시 인터넷 게시판이다. 주로 군 가산점과 데이트 비용을 둘러싸고 과열된 인터넷상의 여성 혐오 여론은 ‘일베’의 등장과 맞물려 ‘김치녀’라는 용어로 정리되면서 그 반대항으로 ‘개념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김치녀’가 모든 여성을 욕하는 게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여성들을 뜻한다는 논리적 회피가 가능해진다. ‘김치녀’와 여가부, 극단적 페미니스트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한국에서 특권을 누리는 쪽은 여성이며 모든 여성이 ‘개념녀’가 되어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길이라는 몽상을 꾸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에 기반을 둔 이들 여성 혐오 여론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지 않는 여성을 싸잡아 혐오 대상으로 삼는 오류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성 혐오 발화자들은 티피컬 걸이라면 기본적으로 ‘개념’을 탑재하고 있으며 이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오늘날의 티피컬 걸은 필요한 상황에서 ‘개념’을 차려 입을 뿐 관계없는 타인에게 섣불리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영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사회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가치를 재빨리 캐치하고 그대로 구현해내는 티피컬 걸은 지배논리에 항거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자주 밉상으로 비친다. 그러나 티피컬 걸은 어디까지나 통계와 관념의 구성물일 뿐, 실체가 아니다. 모든 여성들은 티피컬 걸의 가두리 밖에서 자기 자신으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차별의 원인이 되는 집단적 정체성을 인지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 티피컬 걸은 개념을 입지만 연대하는 여성들은 개념에 도전할 수 있다. 하필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숱한 잣대들의 무개념함을,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의 규칙을 보지 않고 ‘남녀 동일한 의무’를 말하는 행위의 무개념함을 바로 짚게 할 수 있다. 참된 페미니스트라면 여성의 범주를 자의적으로 구분하고 자신에게 동의하는 쪽만을 끌어들이려는 경향을 늘 경계해야 한다. 과장된 비유를 더하자면 이는 피리를 불며 지지자들을 몰고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페미니스트는 비주류의 태도를 취할지언정 주류를 따돌리는 비주류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 여학생을 위한 혜택 제공에 치중하는 ‘대중적 페미니즘’에 나서라는 말이 아니다. 기를 쓰고 대학 내 성차별적 관행을 지적하고 경우에 따라선 대학 밖 사회의 성차별에도 항의하며 소수자로서 여성의 지위를 거듭 드러내야 한다. 소수자를 대변하고자 하는 페미니즘 정치가 다수결 투표로 대표성을 얻는 총여학생회 제도에 기대는 것이 모순이라는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총여학생회라는 제도로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총여학생회는 일종의 입간판이다. 학생을 대변하는 일꾼의 의무를 자청하면서 여기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그보다 편리한 기반은 없다. 학생회는 20대의 대표로서 언론 매체 및 기성세대에게 쉬이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식적’ 기관이다. 사회 연계 활동을 하자면 대학생이 여성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명목상 총학생회와 동등한 지위의 학생회로서 지닐 수 있는 입지와 가시성은 무시하기 어렵다. 총여학생회가 존재 이유를 입증하는 데 실패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더라도, 선배 페미니스트들이 대학 문화 개선에 남긴 공은 길이길이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수업시간 교수의 성차별적 발언에 끊임없이 항의한 총여학생회의 활약으로 강의 평가(이 이름이 바뀐 걸로 알고 있는데, 본질은 그대로니 그냥 쓰도록 하겠다.)에 성차별적 관점 여부를 묻는 항목이 포함되었고, 교수들이 자신의 발언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생리 공결제 제도를 위한 투쟁 덕에 여성이 그간 털어놓지 못했던 몸의 고통을 알리고 이해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도가 마련되었다. 이것이 ‘실질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나는 현재 대학에서 공식적인 여성차별이 과거에 비해 많이 완화되었다는 관점에 동의하지만, 대학 페미니즘이 사적 영역을 파고드는 자조 운동에 머무를 경우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 거라 예상한다. 예컨대 여학생의 외모 꾸미기나 의존적 연애 경향을 문제 삼는 고나리 페미니즘이나, 자존감 부족한 여학생들을 다독이는 힐링 페미니즘이 대학 페미니즘의 미래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총여학생회는 행정조직이자 여학생의 권리 보장을 위한 운동조직임을 염두에 두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와 학칙 마련, 성인지적 관점을 동반한 여학생 안전권 확보, 여학생의 역할 모델이 되어줄 여교수 임용 확대, 여학생 교류 및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소모임 운영과 소식지 발간 정도가 우선 떠오른다. 여력이 남는다면 성노동이나 식당 노동, 돌봄 노동 등의 성별화된 노동 문제라든가 여성의 사회진출이 막히는 채용불평등 및 유리천장 문제, 종군위안부 등 여성과 관련된 역사적 문제, 차별금지법이나 생활동반자법 등 가부장제 규범을 깨는 법률 제정 움직임과 연계해 사회적으로 이슈를 제기해볼 만하다. 대학은 사회와 격리된 공간이 아니며 대학생은 결코 대학 안에서만 살아가지 않는다. ‘여대생’이라는 이름표와 ‘특권계층’이라는 자책 안에서 대학 페미니즘의 영역을 좁히고 ‘당사자 운동’을 절대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먹물 콤플렉스는 생각보다 윤리적이지 않고 득이 별로 없다. 비록 사회의 변화가 더디다고 해도 스스로 마음속에 정립해둔 언어와 가치관은 오래도록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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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운동. 퀴어 이슈와 인종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 내부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 젠더의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고 여성의 다양한 성적 실천을 긍정하면서 성노동, 포르노그래피, 낙태와 재생산권 등의 쟁점을 제시했다. 후기구조주의 이론과 관련이 깊다. [본문으로]
- “Where she walks the revolution’s coming.” 1990년 미국에서 데뷔한 라이엇 걸 밴드 비키니 킬(Bikini Kill)의 곡
의 한 소절. [본문으로] - 1989년 데뷔해 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얼터너티브(alternative) 록 밴드. 보컬과 기타를 담당했던 커트 코베인이 그룹의 프론트 맨이었으며, 그의 아내 커트니 러브는 밴드 홀(Hole)의 멤버이자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라이엇 걸이었다. [본문으로]
- “Your Body Is A Battleground.” 여성의 몸의 문제인 낙태권이 남성들의 논의만으로 금지 혹은 허용되면서 여성의 몸이 마치 남성들의 싸움터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풍자한 표어. 본래 왼쪽 오른쪽이 반반 나뉘어 반전된 여성의 얼굴 정면 사진 이미지에 딸린 표어였으나 연세대 성정치문화제의 걸개그림에서는 방독면을 쓴 여성이 십자가에 걸려있는 작품 “It's Our Pleasure To Disgust You”의 이미지에 위의 표어를 혼성했다. [본문으로]
- “성정치문화제의 필요 이상의 깜짝쇼 덕택에 우파 학생회가 집권한 것이다. 당선소감을 밝히는 신임 총학생회장은 인터뷰에서 선거 승리의 첫 번째 요인으로 성정치문화제의 충격과 그로 인한 학우 대중정서의 이반을 들었을 정도이다.” 이정우, 「한국 지식인 나부랭이들 삽시간에 호모포비아를 극복하다」, 『오늘예감』, 1997년 여름, 57~58쪽. [본문으로]
- 같은 글, 57쪽. [본문으로]
- 1988년 남북 공동올림픽 논의가 국민적 관심을 끌며 대학가에서도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일어났다. 5월 대동제 기간 중 고려대 총여학생회는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북한 여성 사진전시회’를 열었고 같은 시기 연세대 총여학생회도 고려대 총여학생회가 만든 ‘북한여성 생활소개 대자보’를 게재했다. 동아일보(12일자)와 평화신문(22일자)은 이 전시회를 ‘대학가 통일논의에 대한 관심 고조’라는 기사로 소개했으나, 중앙일보(11일자)와 서울신문(12일자)은 정확한 내용 보도 없이 ‘북한 찬양’이라는 캡션을 단 사진 기사만을 실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을 구속하고 고려대 총여학생회장을 수배했다. 그러나 실제 대자보 기획물은 합법적인 출판물에서 발췌한 것들이었다. 당시 연세대 총여학생회장 이은희씨가 석방될 때까지 서울 시내 각 대학의 학생회는 ‘불법구속 규탄대회’를 여는 등 대대적인 석방 운동을 벌였다. 명진(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북한여성 사진전’을 ‘북한찬양’으로 몰아 관련된 구속자 전원 석방해야」, 『한겨레』 독자 투고란 1988. 06. 01, 「‘북한여성…’대자보 관련 구속 연대 여학생 풀려나」, 『한겨레』, 1988. 07. 05. 참조. [본문으로]
- 1992년 당시 행사를 기획한 전남대 총여학생회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따와 이를 ‘백조의 왕자 구하기 작전’이라고 일컬었다. ( 「구속학생에 털목도리 보내기」, 『한겨레』 1992. 12. 01. 참조.) 동화에서 주인공인 공주는 새 왕비의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오빠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마녀로 몰리는 것을 감수하며 묵묵히 쐐기풀을 뜯어다 옷을 짓는다. [본문으로]
- 상업화된 기존문화에 저항하는 비주류문화의 창작자, 비평가, 기획자 등을 가리킴. 90년대 말 널리 쓰인 말이며 특히 한 분야에 전념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실험적 시도를 하며 예측불허로 활약하는 문화계인사에 대한 호칭이었다. [본문으로]
- 이 당시 새롭게 생겨난 여성운동 모임으로는 이화여자대학교에 특별기구로 만들어진 여성위원회(1995년 발족), 대학사회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대학 연합 모임 ‘들꽃모임’, 서울대 내 여성운동단위 연대기구인 ‘관악여성모임연대’(이하 1996년 발족),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집회 당시 경찰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15개 대학 여성운동단위가 모인 ‘학내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대회의’(1997년 발족) 등이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 광의의 성폭력 개념은 기존의 성적인 접촉을 포함한 성폭력(sexual violence)뿐 아니라 남성이라는 권력을 기반으로 여성에게 가하는 사회적 폭력(gender violence)을 성폭력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법률 제정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낀 피해자의 친고죄로 성립하는 성추행(강간을 제외한 육체적 접촉)·성희롱(성적 발언) 외에 분명하게 범위를 제한하기 어려운 젠더폭력은 논의에서 밀려났다. 대학 페미니즘 운동에서 젠더폭력을 성폭력으로 재정의하는 데 따른 남학생들의 반발도 컸는데, ‘성폭력 가해자’를 곧 강간범으로 인식하는 사회통념 속에서 페미니스트에게 지목된 젠더폭력의 피의자가 객관적인 잘못 이상으로 부당하게 오해와 비난을 뒤집어쓴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예컨대 2011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에 접수된 성폭력 사건 중 ‘줄담배를 피우며 이별을 통보해 남성성을 과시한 전 남자친구’가 피의자인 사례가 있었다. 당시 이를 성폭력이 아니라고 반려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이 2차 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논란이 거세지자 해당 학생회는 성폭력의 범위를 좁혀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학칙을 바꿨다. [본문으로]
- 물론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모두가 알듯이 많은 성폭력 사건이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현재 여휴에서 소리 내어 대화하는 것은 무척 주의를 끈다. 2000년대 말 총여학생회는 소식지 등에서 여휴의 이용패턴이 수면 등에 한정된 탓에 여휴가 그 가치를 저평가당해 왔다고 분석하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여휴를 이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이에 대한 호응은 크지 않았다. [본문으로]
- 나윤경,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 남녀공학대학교의 남성중심성: 여자대학교와 남녀공학대학교를 경험한 여학생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제21권 2호, 2005, 181~222쪽 참고. [본문으로]
- 자보에서 예시로 든 것이 교복이었는데, 교복을 선정적인 분위기를 내는 유니폼으로 규정했다는 점이 화제성을 띠어 대학 축제 의상 논란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됐다. 일부 네티즌은 축제에 출입하는 고등학생들은 벌금을 물어야 하냐며 비아냥댔으나 규정은 축제 주점에서 일하는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고 고등학생에게 주류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므로 실제 오해 유발 가능성은 없다. [본문으로]
- 정혁준, 「꼰대스러운 ‘숙대 축제’, 그들만의 ‘드레스코드」, 『한겨레』, 2014. 09. 24. [본문으로]
- 성폭력의 피해자 유발론(victim blaming)에 항의하기 위한 여성운동 방식. 2011년 캐나다에서 ‘성폭력 예방을 위해 여성들은 슬럿(slut)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는 경찰관의 발언에 반발한 여성들이 슬럿을 자칭하며 야한 옷차림으로 거리에 나와 시위한 것이 시초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7월 ‘잡년 행진’이 슬럿 워크 운동을 표방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벗어라 던져라 잡년이 걷는다’, ‘꼴리냐? 넣어둬’ 등의 구호를 제창했다. 2013년에는 ‘잡년 행진’ 외 부산에서 ‘돈 두 댓’이라는 단체가 슬럿 워크를 기획하겠다고 나섰는데, ‘기존의 슬럿 워크와 달리 과다한 노출을 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내걸어 슬럿 워크의 본래 취지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본문으로]
- 이 반론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한겨레』 기사에 정정 보도되었다. [본문으로]
- “올 한해 가장 愛로틱한 시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본문으로]
- 대학가에서 중앙도서관(이나 학생회관) 앞에 자보를 써 붙이는 전통적인 ‘운동권식’ 입장 표명보다 더 효과적인 대사회 ‘언플(언론플레이)’ 수단을 아직껏 나는 보지 못했다. [본문으로]
- 성적 소수자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용어. 본래 ‘괴상한’, ‘별난’ 등의 어원을 지닌 동성애자 비하어였으나, 이 단어를 전유해 적극적으로 사용한 운동가들의 시도 이후 부정적인 함의가 희미해졌다. 퀴어 이론은 후기구조주의 이론의 한 분야로,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의 성역할 수행과 이성애자의 성역할 수행을 비교해 성이 사회적 구성물임을 드러내는 연구 경향을 주로 가리킨다. (**반면 한국에서 ‘퀴어’란 말은 ‘게이’, ‘호모’, ‘이반’, ‘띵’ 등보다 가시성이 떨어졌으며 부정적 함의를 전복하는 효과 없이 대학물 먹은 성소수자들의 최신용어-은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여성들은 자주 자신의 성정체성을 애매하게 걸쳐있는 것으로 여겼고 따라서 퀴어라는 단어의 사용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본문으로]
- Hooks, Bell, 『Feminism is for Everybody: Passionate Politics』, SouthEndPress, 2000. [박정애 역, 『행복한 페미니즘』, 백년글사랑, 2007.] [본문으로]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교양인, 2005. [본문으로]
- 젠더 이론, 정치철학, 윤리학, 수사학 등이 연구 분야인 미국 철학자. 퀴어 이론의 대표 학자로 취급되기도 한다. 주요 저작으로 『젠더 트러블 Gender Trouble(1990)』,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ursive Limits of "Sex" (1993)』 등이 있다. 버틀러에 따르면 생물학적 성이라는 것 자체가 선행하는 사회적 규범에 따라 구성된 것이며, 사람들은 각자 젠더(gender, 사회적으로 정의된 성)를 수행함으로써 특정성정체성으로 취급받거나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 ‘여성 없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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