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몇 개 발견되어 고쳤다.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도 잘못 쓴 부분. 되는 대로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안 내켜 그냥 발행했는데 안 되겠다. 내가 할 것 같지 않은 실수들을 발견하니 우습다. 완벽한 작업물을 내는 데 신경을 덜 쓰면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될 거라 들었었는데 아닌가? 나는 대체로 쓰는 것보다 말하는 게 편하다. 글에 관해서는 리듬을 강박적으로 고려하는 면이 있다. 남의 글에 대해서도 가혹하지만 요즘은 소설 아닌 글은 잘 읽는다. 지난 일주일 간에는 전에 꺼려하던 프로이트의 글도 다 읽었다. 인터넷에서 '반정신의학'을 검색하다 정신분석 세미나(독서모임)를 한다는 공고를 보고 게시일자가 최근인 것에 놀라 참가신청을 했다. 카톡을 보낸 건 저저번주였는데 저번주에는 다른 모임을 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안 갔다. 원래 피해자 모임을 열어서 살리실산을 나눔할 생각이었는데 몸이 너무 아프고 신경쓸 일이 많아 포기했다. 이번주도 모임 추진을 못했고. 요즘은 누군가에게든 내가 뇌해킹, 속칭 마인드컨트롤 피해자(전파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 죽을 기분이다. 아감벤 세미나에서는 이미 '커밍아웃'했지만 적절하지 못했다. 논란을 살 만한 용어를 굳이 쓰는 건 그만큼 타인의 관심을 요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말 꺼내놓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도 있다. 나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아둬야 한다고 본다.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접근 가능한 증명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해도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기에 계속 힘을 내야만 한다. 이것때문에 언팔(트위터)이 발생하더라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아무도 안 보는 블로그에 편하게 작성하는 것보단 거기에 짧게나마 쓰는 게 훨씬 더 긴장도 되고 마음도 무겁다. 피해자 중에 좀 더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지금은 붙었다고 한다.) 동안의 삼십대 피해자가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으나 지나치게 망상에 잠식당한 것 같다. 피해 초기에 정신분열증 약을 먹은 탓이 클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뇌해킹(마인드컨트롤) 피해자가 되면 외부 가해 신호에 맞서 자기 정신을 잘 붙잡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도파민 차단이 주 기능인 정신분열증 약을 먹으면 의식이 흐려져 그나마 힘들여 대항하던 개인의 정신작용이 둔화되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피해 내용을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더 말하고 싶다. 그리고 믿고 궁금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세속적인 희망의 전부다. 어떻게든 안 된다면 권력을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악용 여지를 생각지도 않고 비공개로 둔 채 무관심하게 방조하고 있는 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권력을.
독서모임(이렇게 부르는 편이 낫겠다.) 사람들에게 약간의 기대를 걸었으나 내 피해를 밝힐 상대는 없는 것 같다. 젊은 남자들이 여럿 모였을 때 발생시키는 긴장감이 좋다. 특별히 얻어가는 것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학술 모임을 갖는 것은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침에는 너무 머리가 아팠다. 정신이 사나워서 지하철을 잘못 탔다. 4호선인데 습관적으로 2호선에 탑승한 것이다. 가해자가 내가 그 모임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일단 나온 이상 안 갈 리는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내 자신을 좋아한다. 막상 도착하니 몸이 계속 떨리고 말이 잘 정리되어 나오지 않았다. 카페가 춥기도 추웠지만 가해자가 수를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작년 3월에는 불행히도 이런 이상반응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때 조금만 더 내 몸 상태에 신경을 썼더라면 가해자들이 그렇게 겁없이 행동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름이 가기 전에 이 모든 피해 사항에 대해 더 자세히, 처음부터 끝까지 적을 것이다. 지금 어떠한 이야기를 적더라도 그것보다 흥미롭지 않은 것 같다. 모임에선 예전 학교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라미 만년필을 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 학교 학생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필 같은 색이 겹쳤다. 내 것은 어쩌다 선물받은 것이지만. 말이 잘 안 나온 것이 분해서인지 뒤풀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채식을 한다고 딴죽을 걸어서 바지락칼국수가 나오는 식당에 갔다. 김치가 짜다 해서 걱정했는데 칼국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보들한 면을 오랜만에 먹는 게 좋았다. 속눈썹이 빠져 있었지만 너그럽게 넘길 수 있었다. 개발자라는 사람이 넥슨 성우 권고사직 건을 이야기하며 메갈리아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카페에 갔을 때 뒤편 다른 테이블에서는 페미니즘과 미소지니를 말하는 모임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난 게 더 의외롭게 느껴졌다. 그 사람 말로는 웹툰 작가들이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독자를 무시하는 투로 말했고 정의당이 넥슨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 지지층이 흔들리고 분열이 일어나는 등 손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나는 정의당의 당령은 여성인권신장에 적극적인 쪽이며 중식이밴드 사건 등으로 잃었던 여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게 되어 오히려 이득이라고 말했다. 메갈리아가 왜 페미니즘이 아니고 일베나 마찬가지인 혐오집단인지를 말해달라고(나는 그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입장을 본 적이 없다.) 캐물었으나 그는 개인입장일 뿐이라고 언급을 피했다.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며 가만히 있었다. 사실 나도 메갈리아에는 관심이 없다. 일베에는 여러번 들어가봤으나 메갈리아에는 가본 적이 없다. 티셔츠를 구매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노동문제인데, 부당함에 관해서는 말을 피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불만은 어디에나 있다. 말하는 것만이 이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이다. 프로이트는 문명이 인간의 본성을 억압해왔다는 입장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성욕과 공격성을 들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문명에 완전히 비판적인 것만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초자아와 지상의 권력(아마도 법)에 의해 적절히 제어되어야만 집단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내 상태가 어제 오늘 좀 더 괜찮았더라면 문명 담론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천재 수학자이면서 망상에 빠져 연쇄 폭탄 살인범이 된 시오도르 카진스키의 일화를 들었다. 유나바머라고 했으면 무의식중에 생각을 해냈을 수도 있는데 본명을 들으니 전혀 기억에 없었다. 당시에는 망상에 빠진 줄로 여겨졌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패러다임을 뒤집는 발견을 한 것이었던 의지적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싶다. 나 역시도 남의 이야기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다. 이를 위해 지난주 수요일에는 자크 리베트의 <잔 다르크>를 보았으나 영화가 평이하여 감정적 굴곡을 느끼지는 못했다. 잔 다르크가 늠름하고 잘생긴 부치였다는 것만 특기해둘 만 하다. 지난주 목요일에 학교 동아리 영화제에 가서 본 <로즈마리의 아기>는 그 역할을 좀 과할 정도로 해주었다. 로즈마리는 나다. 그 이야기를 작년 4월에 G에게도 했었는데 오래 전 본 영화라 기억이 틀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틀림없이 내게 들어맞는다. '우리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던, 꼬임에 넘어간 가까운 이의 배신. 나는 이 영화가 몹시 슬프다. 로즈마리를 '정신병 증세가 의심된다'고 쓴 영화제 소개글도 그렇다.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못마땅한 건 당연하다. 영화 속에는 실제로 로즈마리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고 정신과에 입원시키겠다는 산부인과 의사의 협박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닥터 사피어스테인은 악마의 공모자이지만 전문의이고, 의사 집단은 언제나 전문의 자격을 지닌 사람만을 진정으로 신뢰한다. (방금 알게 된 사실. 코네티컷 대학교의 가이 사피어스테인 Guy Sapirstein 등의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위약을 받은 우울증 환자들은 항우울제를 받았을 때의 75-80%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항우울제의 치료효과가 대부분 믿음에 따른 것이라면 굳이 부작용을 감수하며 약물을 처방받을 필요가 있을까. "최근 가장 널리 사용되는 삼환계 항우울제 tricyclic antidepressant에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SSRI,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까지 모든 항우울제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과학적 견해가 급증하고 있다.") 어쨌든 프로이트는 정신과의사로서 혁신을 이뤘고, 출판가에서 정신과의사들은 현재 가장 활발히 저작하는 직업군이다... 나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지만 증명하는 데까지 가야할 길이 아주 멀다. 그것은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반정신의학자들을 심적인 동료로 생각하고 있다. Szasz는 정신분열증이 만들어진 병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들의 주장을 세미나에 갖고 오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다음 번엔 융을 읽는다. 그는 정신분열증의 원인에 대해 유의미한 연구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 융 학회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intp 카페에서 보고 온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 융에 각별히 흥미를 느낄 만도 한데. 발제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말을 많이, 유려하게 전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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