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목요일에 잠을 잘 못 잤다. 감상문 제출을 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의무적인 것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글이었다. 3년 전에 같은 주제로 쓴 파일을 불러와 읽어보았는데 마인드컨트롤 피해로 인한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글이었다. 그것은 이완된 사고와 지나치게 폭이 좁은 맴돌기 중 어느 지점의 오류를 범한다. 다른 사람의 글에서 왜 이런 문장이 튀어나오는 건지 당최 이유를 몰라 하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잘 알겠다. 오히려 본인이 그에 대해 무언가 설명하려 한다면 그 진위성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요즘은 집에 있으면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이를 언젠가 동생에게 집에 수맥이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해준 일이 있다. 사실 수맥이 흐른다는 표현은 Y대학교의 연희관과 외솔관 사이 오솔길에 수맥이 흘러 그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우울과 번뇌에 빠뜨린다는 바 틸트 사장의 트윗에서 먼저 봤던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한 말 중에 유일하게 수긍할 만한 말이었다고 그를 아는, G와 M에게 말했다. 어쩌면 한 사람에게만. 어쨌든 한 사람은 웃었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생각이 너무 많이 한번에 떠올라 다 받아적을 수가 없는 것. 혹은 이어나가려던 생각이 뚝 끊겨버려서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가 없는 것. 전혀 다른 양상 같지만 이 같은 곤란은 늘 뒤섞여 발생한다. 대체로 좋은 생각이 계속 나올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나는 언제나 손목과 손가락 마디에 힘을 주는 것이 어렵다. 지난 주 토요일, 그러니까 3월 10일에 오랜만에 피해자 모임에 갔었다. 그 전날 갑자기 문자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네. 갈게요. 하고 문자를 보냈다. 다음날 간 자리에는 전혀 모르던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들이 잔뜩 나왔다. 대개는 아주 말끔한 차림새를 하고 있었고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했다. 이전에 봤던 피해자 중 많은 경우가 의사소통이 안 되거나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거나 말하는 데 물리적 어려움을 겪던 것에 비하면 피해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머리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종종 느낀다는 한 여성 피해자는 계속 목이 조금 들려 있었고, 어디까지가 본인의 의식이고 어디까지가 조종당하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구분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밖에서 주입된 의식이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고 또 해를 가하거나 인지적 손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에 굳이 거부할 필요가 없는 생각들이라는 말이다. 내게도 그런 때가 종종 있는데, 가끔은 그 똑똑함에 놀라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주 많은,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한 2주 남짓이었다. 그러나 계속 잠이 부족했다. 출근 시간에 나가 퇴근 시간에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주4일을 7시 50분에 나가는 걸로 시작해야만 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간 패턴이라서, 주류에 동참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 신선함마저 느끼게 한다. 다른 때에는 거리가 유독 한산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일어나는 것 자체에는 생각보다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아주 기운이 없고 머리가 무겁고 오싹하며 피로한 상태가 힘들었다. 이것은 날마다 조금씩 다른 감각이라서 표준화하기가 곤란한 고통이다. 어떤 의사도 이것을 객관적인 언어(그러니까 신체 영상 같은)로 변환해줄 수 없다. 과업의 면면을 보자면, 통계학과 생물학이라는 숙원을 이루게 되어 버겁지만 뿌듯하다. 나는 가급적 반론을 삼가고 열심히 들었다.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에 대해 기술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9일과 16일에는 동아리에서 영화를 봤다. 동아리 상영회에 자주 나가는 것으로 문화생활을 갈음하고자 했는데 그 계획이 잘 실행될지는 또 모르겠다. <곤지암>이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싶다. 알라딘에서 실버회원에게 주는 4000원 CGV할인쿠폰을 다운받아서 보러 갈 것이다.
7일에는 트친님(웃음)과 <더 포스트>를 봤다. 나는 이 영화가 그리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는데 그는 매우 흥미롭게 본 것 같았다. 그는 기자들이 나와서 불의와 대적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스포트라이트>라는 영화를 예시로 들었다. 그리고 이 날 카페 마마스에 가서 일회용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이번에 인화된 모든 사진을 통틀어 가장 잘 나왔다. 음식의 다채로운 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고 테이블 바로 위에 놓인 전구에 의해 다소 부자연스러우면서도 무기질적이고 평면적인 질감의 사진이 나왔다. 그 사진을 손에 든 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어두었는데, 문자를 보내는 것은 미루고 있다. 인화를 한 후로 머릿속이 계속 복잡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열한 장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세 장은 마음에 들지 않아 잘라 버렸다. 마지막 사진이 피해자 모임이 끝난 후 이명박 구속 촉구 집회에 가서 현수막을 들고 찍은 것이었는데 그 사진은 인화되지 않았다. 밤에 찍은 것이라 암부가 너무 많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얼굴과 글자는 모두 명확하게 나와있는데 인화를 해주지 않은 것이 불쾌했다. 물론 필름이 있으니 나중에 어딘가에 부탁한다면 인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필름이든 디지털이든 사진을 인화한다면 헬로그래피를 찾아가야겠다. 신촌에 아직도 그곳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헬로그래피에서 신촌 그래피티 사진들과 졸업사진을 인화했었는데 다른 곳에서 인화한 사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화지와 컬러 품질이 좋았다.
사진 중 두 장은 동아리의 영화 상영실에서 찍은 것이다. 그 사진들을 당사자에게 전해주었는데 둘 다 반가워하며 순순하게 받아주었다. 찍을 때는 다들 저어하며 피했기 때문에 의외였다. 처음 카메라를 보여주며 사진을 찍자고 할 때 반가워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유일했다. 그리고 카메라의 물성(찍을 때 셔터음이나 누르는 감각이라든지, 케이스나 그 위의 글씨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 필름의 물성에 대한 감상은 처음 들어서 반가웠다. 돌이켜보면 나도 M에게 인화된 사진들을 받았을 때 똑같은 반응을 했던 것 같다. <사냥꾼의 밤>이라는 1955년작 영화는 동아리에서 최근에 본 영화들 중 드물게 좋았다. 이 영화와 이 날 갔던 사회복지세미나에 대한 노트를 남기고 싶은데 너무 피곤해서 하지 못했다. 다음날인 어제는 약 한 달만에 P사무실에 갔다. 내가 관찰자 시점이고 '당사자'들을 연구대상으로 보고 있고 포지션이 애매하단 말을 들었다. 나는 잘 대처했고 마지막에는 갑자기 톤을 바꿔 몹시 친근한, 흡사 당근을 내미는 것 같은 말을 들었다. 이쪽의 일들에 관해선 소설의 형태로 글을 남기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완전한 사실임을 전제하고 적기에는 곤란한 것들이 많아서. 하지만 소설화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가 가능할지 못미더워하는 이들이 있어 수월하지 못했다. 소설과 달리 내 삶은 정신을 차려 끌어나가지 않더라도 하루가 다르게 쌓이고, 그 안에는 적어둘 만한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오늘은 배고픔과 기운없음을 참다 못해 알리오올리오를 만들 요량으로 파스타를 삶고 마늘을 볶았다. 그러다 남은 대저토마토도 넣어야겠다 싶어 두 개를 꺼내 썰었고, 6등분한 토마토 조각 중 4개 정도를 요리 전에 먹어치웠다. 배고픈 것이 조금 가라앉았고 매우 맛있었다. 마늘과 함께 볶은 토마토는 꽤 잘 익어 문드러졌다. 거기에 소금 두 스푼, 카이옌페퍼와 바질을 조금 넣었다. 토마토소스와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는데 양이 좀 부족하다 싶었으나 시판 소스와 달리 물기가 거의 없는 형태로 볶아도 간이 부족하지 않았고 퍽퍽한 감도 없었다. (아마 올리브기름을 좋은 것으로 듬뿍 넣은 덕분인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본 토마토소스 파스타 중에 가장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맛있어서 홈메이드 최고, 천연식품 최고를 외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외칠 곳이라면 트위터인데 막상 요즘 트위터를 거의 하고 있지 않다. 트위터 속 사람들이 너무 협소하게 느껴지고, 책이나 다른 곳에서 훨씬 근사한 정보들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시간들이 펼쳐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트위터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아팠기 때문이니 아프지 않아질수록 흥미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아프기 전에도 트위터는 내게 그닥 유용하지 않은 툴이었다. 뭐 그때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탓이 더 크긴 하겠지만. 지금도 아주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2013년, 2014년 즈음보다는 훨씬 낫다. 사실 2016년, 2017년의 트위터에서는 흥미로운 정보들을 꽤 얻었는데, 그러한 웨이브가 계속되지는 않는다. 일단 나는 무용한 싸움을 보면서 에너지를 빼앗기는 게 싫다. 나 자신이 정작 트위터에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주제로 얼마나 많은 시비를 "혼자" 걸어댔는지는 논외로 하자.
소비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쓰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인데, 이상하게도 트위터에서는 해당 내용들을 별로 보고 싶지 않다. SNS의 특성이 주목을 받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짧은 문장으로는 아무래도 소비의 목적이나 그 사람이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는 부분 같은 것들의 맥락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무지에서 세일하는 면 레이스 팬티를 회색과 아이보리색으로 4개 구매했다. 전에 사봤는데 촉감이 좋고 편했다. 나는 최근 무신사에서 후드티와 볼캡을 샀고 매우 만족스러웠기에 이에 대해 트위터에 쓰고 싶었는데, 왠지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요는 질이 좋고 할인을 많이 해준다는 것이다. 동생에게도 무신사에서 파는 옷을 선물받았는데 이건 전에 산 것만큼 질이 좋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무신사 중독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생일 선물을 기념일보다 훨씬 빠른 날짜에 당겨 사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로는 품절될까봐 걱정하고 사야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사면 안 되는 것이, 나중에 또 더 예쁜 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트릿패션이나 캐주얼웨어, 홈웨어의 범주에 드는 옷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빨리 몇 장을 사두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실은 기모가 든 두꺼운 후드티 같은 것은 겨울에 사뒀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전에는 대개 (울 함량이 높은) 니트를 애용했었는데 니트는 수명이 짧거나 관리가 어려운 옷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같은 돈으로 최대한 질 좋은 옷을 사려면 역시 스트릿패션 쪽이 저변이 넓다. 나는 G에게도 무신사에 입점한 브랜드의 특정 스웨트셔츠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이것만은 꼭 트위터에 자랑하고 싶다. 자수가 아주 모뉴멘탈하기 때문에. 나는 거슬러올라가면 2011년에서부터 모뉴멘탈한 물건들에 관심이 있었다. 이것에 영향을 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모뉴멘탈한 물건들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시 쓸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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