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가 사주 카페에 갈 거예요. 잘 봐주시는 분이라고 친구가 소개해줬어요. 잘못 들었나 했다. 방금 전까지 우리의 화제는 개인에게 유전자 샘플을 받아 질병 위험 등을 분석해주는 23andMe라는 미국의 유전자 검사 사업이었다. 그는 이 서비스에 관해 개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여는 논문 공모전에 같이 참여해 ‘정신장애와 노동’을 주제로 면접을 보고 온 참이었다. 면접관은 우리 팀에게 연관된 선행연구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다. 23andMe가 정신장애와 관련이 있는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종류의 정신장애에는 유전이 가장 큰 원인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논쟁 중인 주장이다. 그가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23andMe의 결과지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왜 누군가는 여기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지에 대해 그는 말을 아꼈다. 모든 것은 검사에서 도출된 확률에 달려있다는 투였다. 정작 어떤 식으로 그 확률을 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건 전문지식의 영역이었다.)
수명도, 체형도, 지능도 유전에 따른 결정요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위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려받은 유전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면 우리는 불확실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낙오와 무능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굉장한 비관론이다. 인간이 자기의 노력으로 격차를 극복할 수 없다면 주어진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는 자아란 정신장애의 일종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뜻밖에 사주와 유전자 검사 간의 유사점이 보였다. 둘 다 인간의 삶에서 타고난 운명과 이상적인 배합을 중요시한다. 그가 왜 유전자 검사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이야기하다 사주 카페로 화제를 돌렸는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에 비해 사주는 21세기의 대학생에게는 훨씬 반박하기 쉬운 주제가 아닌가? 명목상의 과학과 공공연한 미신 사이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다. 전자는 분석하고 후자는 종합한다. 전자는 확률로 모호하고 미미한 숫자를 제시하지만 후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뜸 권유를 한다.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나를 제외한 두 팀원은 사주에 대한 흥미를 나누느라 많은 말을 주고받는 참이었다. 거기에 대고 대뜸 말을 던졌다.
그럼 별자리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말하자면 서양 사주인데. 막상 한 질문은 그렇게까지 공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상대방의 취향을 쉽게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대답은 싱거웠다. 별자리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사주에는 무언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다음에 나는 무당의 신점 이야기를 꺼냈다. 전하는 말로 무당은 생년월일을 묻지 않아도 신통력으로 사람의 신상을 척척 맞춘다고 한다. 이번에는 먼저 대답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것은 믿을 수 없고 사주는 원칙이 정해져 나오는 것이라 좀 더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사주를 향한 한국인의 특별한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이 년 전 한 인류학과 수업에서 교수는 시간이 나면 명리학을 배우겠다고 농담조로 말했다. 서울대학교 교수가 사주를 본다는 소문이 나면 밥벌이는 걱정 없지 않겠느냐고. 그보다 일 년 전에는 법과대학에 다니다 일신상의 문제로 법 공부를 포기하고 삼촌이 재직하는 대학에서 명리학 공부를 한 다음 전화 사주상담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으로 만세력을 계산하더니 아주 간단하게 사주를 봐주었다. 어떤 해가 좋고 어떤 해는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편 엄마는 사주의 신봉자다. 한 은행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사주 운세를 자주 언급하고 역술인을 찾아가기도 한다. 사람에게 팔자가 있다는 것은 엄마의 오랜 견해였다. 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가 반박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말이다.
사주의 세계관에서 최고로 치는 인간형이란 무엇인가? 오행이 조화를 갖춰 중용을 이룬 사람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내 사주는 불이 너무 많아 본래 타고난 오행을 거스르는 모양새다. 엄마는 아직도 시간이 날 때마다 빨간색 옷을 입지 말고 부족한 오행인 물과 금에 해당하는 검은색과 흰색 옷을 입으라고 권한다. 다행히도 검은색과 흰색은 내게 잘 어울린다. 그것은 공적인 인상을 주고 내 얼굴을 밝게 보이게 한다. 참 오피셜한 사람이에요. 삼 년 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당시에 나는 약간 당황했던 것도 같다. 나에게 공식적인 직함이나 권한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해 어떤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그는 변경된 패널을 상대하기가 버겁다며 참석 결정을 번복했고 대신 요구한 인터뷰에도 불응했다. 대신 자기가 글을 하나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문학평론가였다. 나는 그것을 결정할 재량권도 없었고 인터뷰가 아니라면 원하는 쟁점을 끌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반대했다. 말하자면 나는 분야는 다르더라도 40대 평론가와 20대 평론가 간의 대결구도 같은 것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섭외를 거절한 20대 평론가는 ‘옳은 말만 하는 사람과는 논쟁을 할 수가 없다’고 둘러댔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정말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평론가 따위가 될 수 없다.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그 자리에서 쟁점을 설정해 20대 대표를 자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 경력도 없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 여성소설가는 자신의 첫 소설집 후기에서 자신은 불이 많은 사주라며, 넘치는 오행을 덜고 부족한 오행을 채우기 위해 개명하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고 썼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다 태워버리고 재가 될 운명이란 것도 멋지지 않은가 하는 감상을 남겼다. 그는 최근 몇 년 간 여러 문학상을 고루 섭렵해 이제는 꽤 유명한 작가 중 하나다. 책을 읽었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사주에 좀 더 유보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말을 기억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불을 많이 가진 사주이고, 가끔은 내가 사라져버릴 듯이 강한 주변과의 마찰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가끔은 공격적이다, 잘난 척을 한다, 불만이 많다, 우울하다는 식의 비난을 받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이런 지적들에 시달렸고 좀 더 겸손한 사람,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고 되도록 약자의 편에 서고자했다. 나이에 관계없이 상호 존댓말을 쓰고자했다. 친분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의 말을 고루 경청하려 했다. 상대방이 나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지는 권력구도를 뒤집어 소외된 쪽에 더 힘을 실어주는 조정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화의 가능성이란 극히 제한적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나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과 화해하는 데 골몰해야만 했다. 날선 말들이 숨기고 있는 긍정적 측면을 발견해준 사람들에게 보낼 감사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적어도 질문하고 발언하는 개인으로서 내 자리를 계속 가져가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할지를 생각했다. 처음에 내 생각은 글에 가닿았다. 글은 쓰는 사람의 자아를 구성하고 사회 속에서 어떠한 범주의 틀을 만든다. 가령 위에서 나는 여성소설가를 ‘그’라고 지칭했다. 그녀라는 말은 본래 한국어에 없었는데 영어나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부득이하게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굳이 여자라는 말을 덧붙인다는 부차성, 자연히 ‘그’가 남성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굳어져버린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언젠가 ‘그녀’라는 말이 주는 어감을 이용한 시를 썼고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별을 밝히지 않고 모두를 중립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응당 드러내야 할 성별정체성을 무시하는 성차별적 언사는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페미니즘의 유행 속에서 나는 입장을 정리했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은 약해질수록 좋다. 그것은 생물학적 외견의 변수, 생식능력을 결정지을지 몰라도 역할과 성정의 필연적인 차이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이것은 나의 정치적 입장이다. 이를 객관적인 사실로 보여주려면 증명해야 할 것들이 더 많다. 어쩌면 나는 예외적인 여성으로 행세하는 데 머물고 말지도, 그 과정에서 너 역시도 결국 여성이라는 벽에 부딪힐지도 모른다. 여성으로서 나는 ‘오피셜’함을 객관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수단으로서 글은 부족했다. 대화에 비해 그것은 너무 많은 집중을 요구했다.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내 글을 읽도록 강제할 수는 없었다.
몇 달 간 나는 로스쿨에 갈까 생각했다. 다음에는 관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나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삼 년 전의 행사를 치르고 몇 주일 뒤부터 계속해서 아팠다. 머리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어떠한 힘에 눌리는 것처럼 머리와 얼굴, 가슴이 답답하고 당겼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늘 알 수 없는 추위에 떨었다. 응급실에도 두어 번 가보았지만 진단이 나오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의사들은 이러한 경우 보통 정신과 쪽의 치료를 권장한다고 말했다. 발견된 병인이 없으니 심리적 요인을 의심하는 것 외에 딱히 치료법이 없다는 거였다. 내가 논문 공모전에 응모할 정도로 정신장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하지만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굳이 찾자면 공부하기가 힘들 뿐이다. 휴학을 해도 금방 낫지가 않았다. 하루 종일 잠이 쏟아져 시간이 금방 사라졌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더 빨리 회복이 되는 것을 느꼈다. 가끔은 지나간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려는 생각은 이미 멀찍이 치워놓은 상태다. 도대체 내가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나 아닌 누가 이해해줄 것인가? 객관성을 추구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거의 그 반대편에서 혼자만의 과제를 고수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터무니없이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지고 달리는 운동선수처럼, 나는 언뜻 보기에 보잘 것 없는 기록을 위해 온갖 고통을 참고 견딘다. 그래도 운동선수에게는 모래주머니를 뗀 자신의 실력향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 내게도 그런 것이 없지는 않다. 다 나은 순간 나는 얼마나 펄펄 나는 기분을 누릴 것이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수행할 수 있을까. 다만 그 시점을 내가 선뜻 정할 수는 없다. 그저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뿐이다. 덜덜 떨리는 턱과 분명하지 못한 발성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다 꺼내놓을 수 있다.
병원에서는 기계로 자기장을 쐬는 편두통 치료를 받는다. 내가 겪는 증상은 편두통 이상이지만 이 치료는 놀랍게도 효과가 있다. 개인병원의 의사는 의학적 진단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 없이 나의 의사를 존중해 지속적인 치료를 해주었고 내가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따금 나는 나와 같은 상황에서 정신과를 선택한 사람들을 만난다. 많은 경우 그들은 점점 심해지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고 있다. 그들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먹고 스트레스와 욕심을 버리고 머나먼 어린 시절 속에 잠재해있을지 모를 심리적 트라우마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건 증상의 원인이 아니라 이것이 ‘병’이라는 확신, 따라서 내 잘못이 아니라는 안도감뿐이었다. 약을 먹으면 병이 나아야하는 거 아니냐는 나의 질문을 그들은 회피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전문가의 권위와 자신의 심정만을 신뢰했다. 나는 오랫동안 정신장애인 단체에 찾아가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구를 하고 있다는 실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명백히 하고자 했을 때, 정신장애인 단체의 회원 중 일부는 내가 관찰자 시점에서 그들을 대상화하고 있다며 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단체의 사무총장이 언성을 높여 내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상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스마트폰에 보관하고 있다. 그는 내가 녹음을 한 것에 불만을 드러내며, 어디에 그걸 올린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나중에는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 장애인 차별로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사무실에는 단체 대표와 다른 회원이 있었으며 사무총장은 인터뷰의 당사자가 아니었고 당일 인터뷰는 사전에 정해진 사항이었다. 나는 녹음한 사람의 음성이 대화에 들어있을 경우 허락을 구하지 않은 녹음은 불법이 아니라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쫓기듯 그 자리를 나왔다.
사주 이야기를 나눴던 논문 공모전 팀은 결국 면접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고 와해되었다. 그 자리 이후 그들을 다시 만난 일은 없다. 그날 사주 카페에 간 사람은 이것에 대해서도 귀띔을 들었을까. 한편으로 나는 몸이 완전히 나으면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졸업 이후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은 정신장애인 단체에 대해서도 비슷한 마음을 갖고 있다. 몇 번의 만남은 모르는 중에 서로에게 많은 것을 남긴다는 소박한 희망을 나는 지지하는 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주보다 체계적이지 않은 추상적인 낙관이 훨씬 더 큰 힘이 된다. 그 밑에는 진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보여주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좋은 해결책을 찾고 조율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우리의 갈등은 단지 아직 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을 뿐이라는 것. 원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더라도, 더 이상 원망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무언가를 더 시도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늘 가지고 살아가려 한다. 삶에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 더 많기에 이정표를 세우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사주팔자의 지침도, 자신이 저질렀을지 모를 과오에 집착하는 것도 이정표가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 요즘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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