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용, 시각의 결정

qna 2013. 7. 7. 20:26

시각視覺의 결정結晶     _김구용

                                                                      

현실의 그림자는 내 외로운 시각 안에서 결정한다. 눈은 헛된 꿈의 각도를 통하여 내다본다. 바람에 흩어지는 매연이 내 칠색七色의 애정을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저기에는 비애도 없이 독사가 똬리를 튼다. 아니, 방심한 톱니바퀴가 돌아간다. 얼마나 매혹적으로 흘러내리는 피가 꽃처럼 만발하느뇨. 몸은 비를 노박 맞는다. 더러운 절벽絶壁에 침투한 내 골육의 그림자는 관념의 환광幻光으로 나타났을까. 나의 안계眼界는 짜디짠 눈물에서 암흑으로 용해한다. 거기에는 하나의 태양과 수면睡眠도 없다.

 

시에 드러난 것으로 볼 때 ‘결정’이 될 수 있는 것은 우선 소금이다. 화자는 애정이 지워진 세계에서 “짜디짠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의 직접적 원인으로 “바람에 흩어지는 매연”을 들 수 있겠지만, 신체적 자극에 따른 반응으로서의 눈물은 감정적 변화를 수반할 경우와 달리 짭짤하지 않다고 하니, 화자는 무엇에서든 슬픔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이 시 전체가 일관되게 무력감과 실패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만큼, 이 같은 해석은 사족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슬픔의 원인과 경로를 추적해보는 것이 어떨까. “헛된 꿈의 각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시각은 의식 밖을 모르기에 독단적이며, 사물의 ‘그림자’ 밖에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가 그리고 있는 외부 세계는 “비애도 없이 독사가 똬리를” 트는 곳이다. 파악 곤란한 세계 앞에서 화자는 회의를 느낀다. ‘독사’로 표상되는 자연물과 원초적인 생명 뿐 아니라 ‘톱니바퀴’로 나타난 문명의 기계성 역시 나의 감정과 교감해주지 않음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화자는 먼저 밖을 향해 ‘피’를 내보이고, 때마침 쏟아진 비를 맞는 것으로 나름의 화답을 시도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때 화자는 나의 육신 역시 파악되는 부분은 ‘그림자’ 뿐이며, 이전까지 알던 나는 모조리 관념에서 끄집어낸 ‘환광’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도래한 캄캄한 세계는 외부(‘태양’)에서도, 내부(‘수면’)에서도, 전환의 계기를 맞지 못한다. 알고 있던 세계가 흐물흐물해지며 녹아내린다. 시각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눈물에는 불순물이 섞여들고 만다. 마르며 크고 불투명한 결정을 뱉어낼 만한.

 

 

Posted by 밀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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