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빙의 개념이 다른 해석체계와 중첩 혹은 상충하는 사례 연구
1. 빙의는 어떻게 사회적 현상이 되는가? 2. 빙의 치료하는 스님들-무속신앙과 결합한 불교의 사례 3. 감정의 생성-빙의 치료의 효과 4. 빙의와 정신질환의 구분은 가능한가? |
1. 빙의는 어떻게 사회적 현상이 되는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한(恨)’으로 해석하는 사고는 근래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어디에 말을 꺼내놓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이는 태도는 봉건적이며, 기존 사회의 체제를 내면화하게 강요함으로써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스러운 내면에 공감하는 것이 익숙하다보니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스스로 핍박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억울함을 분출하는 이들이 많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수동적 태도는 극복되어야 하므로 한국인의 국민성을 새롭게 정의, 보급해야 한다는 실천적인 관점이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한의 정서를 읽어내는 것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이 보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탈식민주의적 문제의식도 발휘된다.
한의 비판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한국적 정신’에는 해학이나 자유분방함, 신명, 종종 ‘냄비정신’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일촉즉발의 감정적 궐기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에서 한이 부각되는 것이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는 이유에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한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생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이며 한의 발견은 고통 받는 약자의 내면에 다가가겠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 종교에서 한스러운 원혼들을 대접하는 일련의 의례들은 남의 억울한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현세에 존재하는 고통들은 도처에 존재하는 ‘감정’ 때문이며 이를 해소해야 혼이 내세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해석 틀은 신도 본인에게 모든 책임을 부과하거나 절대적인 악의 퇴치를 이상으로 삼지 않는다. 한의 이면에는 타자를 배려하고 공존하려는 정신이 있다. 이를 비합리적이거나 체념하는 태도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에는 유용했을 것이다.
뒤르켐은 종교와 과학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을 해명하기 위해 특정 사회 안에서 종교적 신념이 생성되고, 반복되는 의례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에게 확산되며 정교하게 체계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과학이 발달하면서 종교적 해석체계를 상당 부분 과학적 설명이 대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의미 있는 이유는 집단적인 행동으로 개개인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양된 감정은 다시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어 힘든 상황에서도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한다. 비록 역할은 축소되었지만 종교는 한 공동체의 특성을 해명하기 위해 여전히 의미 있게 봐야할 대상이란 것이 뒤르켐의 생각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 군락에서 개인은 자신의 근심을 드러내기 위해 발작 행동을 고안하며 이 중 집단의 질서 유지 및 영속화에 필요한 것들만이 의미화되어 보존, 확산된다고 했다. 샤먼 후보자가 겪는 무병이 대표적이다. 푸코는 아프리카에서의 선교활동 중 줄루Zulu족의 종교 체계를 보고한 캘러웨이를 인용해 샤먼이 되어가고 있는 남자의 상태를 유럽에서 규정하는 ‘우울증’ 혹은 ‘히스테리’ 증상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정신질환은 서구에서 주로 심리적 원인이 표출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개인이 가진 심리적 문제는 본원적으로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떤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는 특정 성격유형을 이상화, 표준화하며 이에 맞지 않는 개인은 사회적 활동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유행하는 정신질환의 양상과 치료법이 시대에 따라 달라져온 역사가 병의 사회문화적 성격을 증빙한다. 그러나 샤먼 후보자에게서는 증상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가 진정으로 ‘사회적’이다. 그는 부족 사회에서 미래를 예지하는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기 때문에 그의 심리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행해지지 않는다.
샤머니즘을 연구한 엘리아데는 샤먼 후보자가 선배 샤먼의 지도에 따라 의식과 육체가 형해화되는 상징적 의식을 거쳐 샤먼으로 재탄생하고 집단의 의례를 주관하거나(백-샤머니즘) 아픈 개인들을 치료하는 주의의 역할(흑-샤머니즘)을 하는 양상들을 기술했다. 샤먼이 겪는 트랜스 상태에는 샤먼의 혼이 밖으로 나가 영계를 탐사하는 탈혼(ecstasy)과 외부의 혼이 샤먼의 몸 안에 들어오는 빙의(possession)가 있다. 엘리아데에 따르면 탈혼은 유목과 수렵 생활을 하는 북방 시베리아의 샤먼들에게서, 빙의는 농경생활을 하는 지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는 신내림이나 굿중의 신들림에서 빙의를 경험하는 무당의 사례를 흔히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탈혼 경험을 언급하는 무당은 드물다. 신비체험의 형태뿐 아니라 빙의되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형태에서도 지역적 특수성을 찾을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에서 의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 부족의 관심을 끄는 동식물이라고 했다. 샤머니즘에서도 특정 동물의 혼-가령 독수리나 곰-이 샤먼에 빙의한다면 틀림없이 해당 문화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동물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물보다는 조상이나 일가친척에게 빙의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한국사회가 혈연공동체를 중심으로 도덕을 발달시킨 사회임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굿의 사례를 하나 생각해보자. 시집가 시부모와 살고 있는 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다. 일을 하는 중에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접시를 깨거나 물을 흘리는 일이 잦은가 하면 하루 종일 드러누워 자고서도 머리와 어깨가 짓눌리듯 아프다고 호소한다. 보다 못한 친정어머니가 딸을 만신에게 데려가 보인다. 무당은 귀신이 들렸다며 집안에 죽은 어린아이가 없는지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던 딸이 시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가진 아들을 유산한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딸에게는 그 동자 귀신이 씌인 것이다. 제를 올리는 도중 무당이 별안간 어린아이 울음을 내며 자리에 참여한 친지와 마을 공동체를 납득시킨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위로하고 무당은 죽은 자의 혼이 산 자의 몸에서 떠나갔다고 선언한다. 이 같은 의례의 과정은 일종의 연극으로서 가정에 내재한 문제를 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구성원들 간 화해를 도모하는 장이 된다. 집단의 불안이 빙의체험으로 드러나고 공적인 무대에 올라 구경과 논의의 대상이 된 사례는 서구 기독교사회에도 있었다. 1632년 루됭의 마귀들림 사건은 흑사병으로 루됭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사망한 직후 발생했다. 잔 데장주 원장수녀를 비롯한 우르술라회 수녀원의 수녀들은 특정 시간 동안 악마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전시했고 구마사와 의사들이 수녀들의 상태를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주임신부였던 위르벵 그랑디에가 ‘마법사’로 몰려 처형됐지만 수녀들은 일종의 피해자로 간주되어 모든 죄로부터 해방되었다. 10년 간 루됭은 순례자와 자선 단체의 발길로 분주했으며 악마의 출현이 대중에게 익숙해져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빙의가 위기에 몰린 사회에서 집단적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한 것이다.
빙의체험이 집단 혹은 사회에 유용하므로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는 가정이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서구에서 서브컬처 집단이 인간 의식의 확장을 꾀하며 환각경험을 추구했고 일부 사상은 뉴에이지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나 현대사회에서 트랜스 상태를 긍정적으로 여기는 집단은 드물다. 빙의는 대개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파악되고 있는 듯하다. 온몸이 무겁고 아파 일을 할 수 없고 몽롱한 상태에 급기야 환청이 들리거나 표정이 바뀌어 다른 사람의 말을 내뱉는 ‘빙의 환자’는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신내림을 받고 무당의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근 십 년에서 이십 년 사이 한국사회에서 빙의 현상을 신성하게 대하는 관점의 입지가 많이 약해졌다. 특히 정신질환을 뇌의 생물학적 문제로 보는 관점이 득세하면서 이상행동을 다스리는 굿의 심리적 효과를 주장하기도 곤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굿에 참여하고 무당의 신통력을 인정해줄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것이 희미해졌다. 미신으로 취급되는 무속은 개인의 문제해결에 동원됐을 때 더 이상 공동체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겪는 빙의 현상은 대개 잡귀가 들린 것인데 신이 든 것으로 오해하고 내림굿을 하면 큰일이라며 신성한 무병과 치료의 대상인 빙의를 구분하기도 한다. 내림굿을 하는데 몇 천만 원이 들어 비용을 대기 어렵다는 것도 빙의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다. 이 같은 이유로 빙의는 점차 개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자신이나 친지가 겪는 증상을 빙의로 해석하고 무당이나 퇴마사를 찾아가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과정이 주변에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미디어 등에서 빙의 치료를 흥밋거리로 다루는 일도 줄었다. 요즘의 TV는 오히려 정신병원 강제 입원 피해자를 조명하거나 동네의 ‘이상한 사람’을 찾아가 정신과 치료를 권유한다.
본문은 2016년 한국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서 통용되는 빙의 치료의 사례를 탐구한 글이다. 종교가 집단적인 데 반해 주술은 사적이라서 교회를 이루지 못한다는 뒤르켐의 구분을 받아들이자면 본래 종교의 성격을 갖고 있던 빙의 치료는 오늘날 주술로 그 영향력이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빙의를 연구주제로 삼은 것은 필자가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팠고, 도중에 가족으로부터 “굿을 해야 할 것 같다”하는 말을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겪는 증상은 심한 두통과 머리 눌림, 주의집중력 저하, 뒤숭숭한 꿈자리, 오한이 들거나 열감이 느껴짐, 몸 곳곳이 쑤시거나 저림, 특정 부위의 감각이 사라짐, 어지럼증, 가슴 통증, 복통과 헛배 부름, 졸음이 쏟아짐, 걷거나 몸을 가누기가 힘듦, 시야가 흐려짐, 불현 듯 눈물이나 콧물이 쏟아짐, 몸이 저절로 움직임, 몸의 힘을 빼면 의도하지 않은 말이 튀어나옴 등으로 빙의 치료사들이 주장하는 빙의 증상과 일치한다. 이를 빙의로 해석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해석체계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빙의 치료사들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는지가 궁금했다. 또한 빙의가 개인화되었더라도 기존 종교의 해석체계를 원용하고 있으며 한국인에게 친숙한 개념이므로 빙의 치료 사례로부터 한국사회의 일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래에서는 지인의 빙의 치료 사례와 해당 법사와의 만남, ‘빙의 치료 전문 사찰’을 운영하는 승려와의 상담 내용을 다룰 것이다. 퇴마사로 자임하는 이들 중 극히 일부의 사례이지만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서 빙의를 해석하는 틀과 그것이 다른 해석 체계와의 관계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가를 분석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계의 논문 및 문헌으로부터 마귀들림(빙의)과 정신질환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읽고 종교와 과학의 대립구도 속에서 종교적인 것을 지목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지적할 것이다.
2. 빙의 치료하는 스님들-무속신앙과 결합한 불교의 사례
신흥종교의 교주였던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대를 이은 친분을 이용, ‘비선실세’가 되어 국정에 개입했다는 스캔들이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종교적 신념에 관한 의혹이 불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기독교계 신흥종교인 영세교 교주 최태민과 각별한 사이였으며 신천지 교주 이만희와도 친분이 있다.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인터넷에 박정희, 육영수 내외의 영정을 모셔놓고 굿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돌기도 했다. 해당 사진은 비명횡사한 박정희, 육영수 내외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2002년 지낸 ‘영산재(靈山齋)’라고 한다. 불교에서 영혼 천도를 위해 지내는 의식인 영산재는 국가무형문화재 50호로 등재되어 있다. 불교 교리를 기반에 두고 있지만 음식을 차려 영가(靈駕)에게 재를 올린다는 면에서는 민간신앙을 수용한 부분도 많은 의례이다.
영산재를 제의한 사람은 2006년 박근혜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거라 예언했던 여승 묘심화라고 한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자비정사의 주지인 묘심화는 빙의 치료로 유명하다. ‘빙의’라는 책을 펴내고 탤런트 김수미의 구병시식(救病施食) 등으로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묘심화는 영국 BBC방송의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티베트 불교에서 달라이라마의 환생인 룸범 린포체 스님 일행이 자신을 방문했다며 국제적인 명성까지 자랑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빙의’라는 책을 읽고 묘심화 스님을 찾아왔다.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박근혜에게서 묘심화는 “하얀 연꽃의 느낌, 관세음보살과 선덕여왕의 기운, 여(女)미륵, 여성대통령의 상”을 보았다고 한다. 친분을 나눈 끝에 2006년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라는 책을 쓰기에 이르렀지만 한나라당 경선에서 탈락한 후 박근혜는 더 이상 자비정사를 찾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기자들은 오랜만에 묘심화를 인터뷰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 귀신이 붙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는 부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가까운 사람을 멀리 하라고 조언했다고만 한다. 국정농단 사태를 현세의 문제, 인간의 문제로만 다루고자 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뉴시스의 2011년 기사에 따르면 묘심화는 모계 혈통으로부터 ‘신기’를 물려받았다. 외할아버지는 백두산과 금강산에서 득도한 도인이었으며 어머니는 말년에 불교에 귀의한 무속인이었다. 묘심화는 양호교사, 간호사로 일하다 결혼했으나 결혼 3년 만에 무병을 심하게 앓았다. 이후 묘심화와 남편은 갈라져 각각 불교의 수도자가 되었다. 묘심화(妙心華)라는 법명은 천일기도 중 관세음보살을 만나 천상계를 돌아보고 오는 탈혼 체험을 고했더니 큰스님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달군 쇠 지팡이가 정수리를 뚫고 오장육부를 거쳐 회음부로 빠져나갔다는 환각체험은 샤먼의 입문의식과 유사하다. 묘심화 본인도 무녀가 될 수도 있었지만 고행과 기도를 거듭해 득도에 다다랐다고 고백한다. 묘심화를 취재한 영국 BBC방송의 2006년 프로그램 ‘Kick Ass Miracle’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해당 에피소드의 제목은 ‘Appeasement(위무, 달램)’로 태국, 한국, 네팔, 인도의 빙의현상을 다루고 있다. appeasement라는 표현은 묘심화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듯 동양에서 빙의를 다루는 방식의 특수성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말인즉슨 서양의 구마의식과 달리 동양에서는 귀신을 처치해야 할 악이 아니라 한을 풀어줘야 할 불쌍한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묘심화의 구병시식은 이승을 떠도는 영가의 천도를 돕는 치유의 과정으로 의미화된다. ‘Kick Ass Miracle’이 담은 구병시식 장면에서 묘심화는 경련하는 여인에게 팥을 뿌리고 종을 흔든다. 급기야 여인은 귀를 막고 소리를 흔든다. 5분 후 정신을 차린 여인과 묘심화가 대화한다. 구병시식이 끝난 후에는 춥고 시원하게 뭔가 빠져나간 느낌이 든다고 한다. ‘포제션(possession)’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한국어로 설명하는 묘심화 뒤로 박정희 내외의 영정사진이 모셔진 벽면이 스쳐지나간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Chris Crudelli는 무술(martial art) 전문가이며 Kick Ass Miracle은 세계 곳곳(주로 아시아)의 체술과 기행을 답사한 프로그램 ‘Mind, Body & Kick Ass Moves(2004)’의 후속작이다. 30분가량의 다큐멘터리이지만 한 에피소드에서 여러 지역을 다루므로 한 지역에 할애된 시간이 적어 이국의 신비한 풍물을 시각적 볼거리로 소개하는 수준에 머문다.
묘심화는 2012년까지 온라인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빙의에 관한 책도 3권 펴냈다. 2002년에 쓴 첫 번째 책 ‘빙의’에서는 찾아온 ‘빙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술했지만 2006년의 ‘빙의, 그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한국 사회와 정치의 부정적 측면을 빙의의 일종으로 보고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보면 빙의가 하나의 은유로서 쓰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묘심화는 빙의가 정신질환처럼 인간에게 실제로 착란과 광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정신질환과는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치료는 듣지 않고 “고차원의 종교적 심령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빙의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정신을 강하게 하는 것”뿐이며 정신을 강하게 하려면 절이든 교회든 신앙생활을 하며 수행하는 것이 최고라 한다. 묘심화는 불가에서 보는 빙의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육신을 잃은 혼백(영혼)이 유주무주(有主無主) 고혼이 되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인연처를 찾아 우주법계를 떠돌다가 혼백이 머물기에 적당한 장소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미혹하고 싸늘한 영체를 그곳에 숨기게 된다. 그로 인해 영체가 들어간 장소는 흉지, 흉가가 되게 마련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 또한 귀신에 홀린 상태가 되어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몸에 직접 유착되면 유착된 사람은 발작을 일으키거나 황폭한 성격으로 변하여 심지어 폐인이 되기도 한다.(묘심화, 2002)
‘빙의 치료’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묘심화 외에도 많은 ‘법사’들이 퇴마사를 자임하고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불교 승려의 외양을 띠고 있다. 그 중 한국불교 조계종에 등록된 승려가 운영한다고 광고 중인 ‘화엄선원’에 문의해 상담을 받아보았다. 화엄선원은 부천 시내 상동역 앞에 있는 대형 상가 건물 5층에 입주해있다. 입구에는 빙의 치료 광고 외에 부처님 오신 날 기념 축원이나 수능 시험 합격 기도발원 현수막도 걸려 있어 일반적인 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리문을 열면 풍경소리가 나고 바로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나온다. 신도들의 주소가 적힌 연등이 여럿 천장에 달려 있었다. 근처의 주소는 잘 보이지 않았다. 뉴스를 보고 있는 중년의 여자 ‘사무장’을 만나 상담을 접수하고 잠시 기다렸다. 부모와 함께 안 오고 혼자 왔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다. 상담료는 5만원 선불이었다. (카드도 받는다.) 주지실은 법당 바로 왼쪽의 꽤 큰 방이다. 스님의 자리가 꽤 높은 곳에 책상과 함께 있어 위압감이 느껴졌다. 병원 진료실을 더 크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뒤편에는 장판이 깔려 있고 좌상과 방석 몇 개도 놓여있었으나 사용되고 있지는 않았다. 주지 외에 다른 스님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주지인 H는 필자가 들어가 앉자마자 사연은 묻지도 않은 채 자신의 눈을 보고 혀를 내밀어 보라고 두 번 요청했다. 사람에게는 각기 ‘오로라’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오로라의 색을 볼 수 있어서 그 사람이 빙의됐는지 아닌지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거였다. 다음에는 사무장에게 접수할 때 알렸던 생년월일시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사주의 만세력을 계산해주는 프로그램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사주 상으론 나무랄 데가 없지만 빙의가 되어 있어 이 사주대로 풀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다음에는 하는 일과 증상이 어떤지를 물었다. ‘인류학과’라는 학과는 처음 들어보았다고 했다.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텐데 학교를 다닌다니 의외라며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하냐, 이제까지 다른 (빙의 치료) 알아본 적 있냐, 부모님과 함께 오지 그랬냐고 연신 재촉했다. 사람이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잡신이 씌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데 자기로 치면 병원 중에 서울대병원에 찾아온 거나 다름없는 전문가라고 했다. 본인이 유명한 이유를 들며 아침마다 5개 기업에 하루의 운수를 점쳐서 보내준다는 말도 했다. 이것이 다 과학이고 우주의 기운이 작용한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맡기면 붙어있는 게 어떤 존재인지 부모님도 눈앞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정확한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피했다. 최면 비슷한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방법을 계속 물으니 “지금 자기한테 붙어있는 게 신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스님한테 맡기면 그게 조상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아니면 동물 영이 붙을 수도 있는데 그걸 다 보고 왜 왔는지도 다 알 수 있다. 지금 상태가 많이 위험하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나중에 정말 미쳐서 다시 온다. 정신병원 갈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자신을 찾는 신도들 중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례를 두엇 말하고 “약을 먹으면 정신이 멍해지고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며 앞서 자신의 ‘치료’를 병원에 비유했던 것과 달리 병원 치료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더불어 끝까지 부모와 함께 올 것을 권유했는데 이는 비용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H스님은 “그건 가서 사무장님에게 물어봐. 스님은 돈 얘기를 안 해.”하고 정확한 액수를 말하지는 않았다. 성과 속을 구분하는 종교적 관습을 따르려는 시도의 일환 같았다.
나중에 사무장에게 알아본 치료비용은 500만원이었다. 부모와 함께 왔으면 700만원을 불렀을 텐데 집에 가서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값을 낮췄다고 했다. 화엄선원의 인터넷 카페 중 대학생이 올린 상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도 “부모와 함께 오면 훨씬 효과적입니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대학생은 H스님의 주 고객층은 아닌 것이다. 한국에서 전통 신앙은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전달되는 경향이 있다. 묘심화가 박근혜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도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를 꿈에서 만났다”는 등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영산재를 제안했으며 그 외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H스님의 경우도 ‘치료’를 받도록 설득하려면 가족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이고, 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모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와 같이 비용 부담 능력이 없어 보이는 내담자에게는 큰 공을 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다. 상담에 걸린 시간은 총 30분이었다. 내담자의 사연을 듣기보단 자신을 과시하는 말을 많이 했고 ‘빙의 환자’를 안정시키는 대신 ‘빙의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불안감을 조성했다. ‘가족’과 ‘불안감 조성’이라는 빙의 치료의 전파 경로는 다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아래 3장에서 다시 기술하도록 하겠다.
H스님과 30년 동안 같이 일했다는 사무장에 따르면 H스님은 강원도 월정사에 있었으며 여기로 이사 온 것은 7년 전이다. 부천에 오기 전에는 동대문에도 있었지만 여기가 역에서도 가깝고 찾아오기 쉬워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이사했다고 했다. 스님이 퇴마를 하는 것은 예전부터 큰 스님들이 나라의 귀신을 쫓는 의식을 지냈듯 당연한 거라고 말했다. 내친 김에 사무실 벽에 걸린 학위 수료 사진과 태국어로 된 학위증(?)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사무장은 그런 걸 왜 궁금해 하냐고 답을 피했다. 부모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묻는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도 주었다. H스님은 빙의 치료를 받으면 단번에 귀신이 나가지만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 언제 다시 귀신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9개월 간 책임치료를 해줄 것이며 이는 병원에서 사후관리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9개월의 책임치료란 계속해서 화엄선원에 나오라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신도를 확보하고 법회 등으로 신도들이 모이는 자리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불교사원의 한 형태로 보기에 어색함은 없으나 일반적인 절에서는 치료 명목으로 한 번에 몇 백만 원을 신도에게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3. 감정의 생성-빙의 치료의 효과
K씨(30대 초반, 여)에게서 환청을 없애준다는 무당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올해 가을 초입이었다. K씨는 20여 명이 참여중인 “전파피해자(마인드컨트롤 TI)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환청만 없애실 거면 소개받은 무당이 있다”고 말해 다른 참여자들의 반발을 샀다. 평소 가장 말이 많던 참여자 C씨(40대 초반, 남)는 “우리가 겪는 피해는 과학적으로 실체가 있는 것인데 미신을 끌고 와서 물타기를 하면 어떡하냐”고 K씨를 공격했다. 뒤이어 K씨와 같이 방을 구해 살려다 다툰 적이 있는 A씨(30대 초반, 여)가 K씨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전파피해자들 상당수는 누가 자기에게 어떤 원리로 공격을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은 못하지만 이 기술을 알거나 시키는 대로 하면서 피해자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이들이 ‘피해자’로 위장해 다른 피해자들의 모임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믿고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K씨는 단톡방을 나갔다. 11월 K씨에게 그 일을 물으니 “홍성에 오시면 데려다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답이 하루 지나서 왔고, “가서 이상한 이야기는 안 하셨으면 좋겠다. 다투시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11월 13일 홍성역에서 K씨의 차에 얻어 탔을 때에도 그는 “가서 보면 정말 별 거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번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반응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술적인 방법에 스스로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투였다. 지금 만나러 가는 분은 이모에게서 소개받은 것이므로, 사적인 친분을 해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당진의 마사지사에게서도 관리를 받고 있는데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이 찾아가기도 할 정도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본인이 느끼기에는 (빙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고 이따금 이 분을 찾아가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도착한 곳은 입구가 허름한 상가 건물 2층의 ‘선문사’였다. 들어가니 싱크대가 딸린 거실에 좌탁이 놓여 있고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 한 명은 K씨의 이모이고 다른 한 명은 그 지인이며 남자는 수련 중인 법사였다. K씨가 도착하자 살갑게 맞았고 필자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으며 남은 피자를 먹으라고 제안했다. 조금 기다리다 선문사를 운영 중인 J씨를 만났다. 필자의 생년월일시를 듣고 고집이 강하지만 귀가 얇고 마음이 여린 성격이고, 머리가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가 두 번 결혼을 해서 할머니가 둘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필자에게 지금 할머니 귀신이 붙어있는데 그 할머니가 동자들을 데리고 들어앉아있다는 것이다. 화엄선원에서 귀신이 셋 이상 붙었지만 신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과 달리, 여기서는 신내림을 받으면 무당이나 점쟁이를 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직 젊고 결혼도 해야 하고 점쟁이 일이 좋은 것도 아니니 정말 뜻이 있으면 살다가 나중에 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했다. J씨 본인도 원래 건설 일을 하다 ‘미쳐 돌아서’ 점쟁이가 된 게 30년 전이고, 조상신인 할머니가 자신에게 점궤를 일러준다고 말했다. 신과 잡귀의 구분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빙의 치료 사진을 보여주었다. 음식을 차린 제단 앞에 종이로 된 발 같은 것을 벽 한면을 전부 차지할 크기로 만들어 내렸는데 그 종이의 문양을 모두 직접 손으로 파서 만든다고 했다. 방에 있는 보살의 그림도 전부 J씨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필자가 제를 올리지는 않겠다고 하니 “귀신이 나오기 싫으니까 못하게 막고 있다”고 하다가 “만약에 점쟁이를 한다면 잘하긴 할 것”이라면서도 “귀신이 거짓으로 말하는 걸 진짜로 믿으면 곤란하다”고 우려했다. J씨에게 붙어있는 할머니가 어떤 존재인지 제단을 보고 맞추면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여태껏 그걸 맞춘 사람은 거실에 있던 남자 법사 하나뿐이란다. 방 밖으로 나오니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시는지’를 묻다가 필자가 그냥 가 보겠다고 하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심각한 말투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K씨의 이모가 먼저 “이건 그쪽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내 친척 중에도 아들에게 여자애 귀신이 붙은 사람이 있는데 그 아들이 여자애가 시키는 대로 과자며 치킨 같은 걸 매일 사먹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병원에 가니 원래 말랐던 몸이 온데간데없이 살이 잔뜩 찌더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동조하면서 치료를 안 받으면 위험하다고 말하다가 필자처럼 고집이 세 보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귀신이 들어왔는지 의아해했다. J씨가 거기에 답하며 다시금 필자의 사주를 읊다가 양력 생일을 음력으로 잘못 알고 말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J씨는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며 직접 쓴 부적 2장을 줄 테니 이걸 가지고 돌아가서 자다가 꿈에 누가 옆에 누워 나타나는지를 전화로 말해달라고 했다. 그게 바로 귀신의 정체라는 것이다. 부적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끝까지 손에 쥐어 주길래 그걸 가지고 선문사를 나섰다. 그동안 K씨는 거의 말이 없었다.
K씨는 누가 칩을 이식하거나 전파무기로 공격을 하고 있다는 전파피해자들의 말이 맞는 것인지, 귀신이 들렸다는 J씨의 말이 맞는 것인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일단 이모에게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밑지는 셈치고 가본 것이고 효과가 있어서 계속 다닐 뿐이다. 환청이 매번 들리는 것은 아니고 몇 달 전 한번 들렸는데 그게 하필 할머니 목소리여서 귀신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일단 ‘법당’에 가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치료를 하면 거기 할아버지(J씨)가 징을 두들겨 주시는데 그러면 좀 시원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귀신이 아니라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다. 같은 대학을 나온 아는 언니가 같은 증상으로 오래 공부를 못했는데 다시 의사가 되어서 원인을 밝히려고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K씨는 필자가 J씨의 설명모델(할머니와 동자들이 몸에 붙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데 별 반감을 표하지 않았다. 믿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건데 사람마다 다를 거라고 했다. K씨는 정신과 약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생각이 별로 없었다. 정신분열증 약인 아빌리파이는 먹으면 안 되지만 우울증 약은 사람을 업(up)시켜 주므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증상을 해석하는 전파피해자, 무속인, 의료인의 방식은 각기 상충되지만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이 논리적 모순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감정적 안정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전파피해자들은 같은 증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종종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지가 되곤 한다. 무속과 의학의 치료는 본인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것도 ‘권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증상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인류학에서는 종교적 의식과 주술이 근심을 없애는 수단이 되며 따라서 실제적, 감정적으로 합목적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근심을 느끼는 사람이 근심의 원인을 뚜렷이 인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의식으로 그것을 없앨 수 있겠는가? 래드클리프-브라운은 종교와 주술이 감정을 완화시키는 이유는 두렵거나 불안한 감정을 생성하는 것이 바로 종교와 주술의 역할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레비-스트로스가 읽은 바에 따르면, 말리노프스키는 은연중에 ‘정신 치료’가 하나의 문법을 부각함으로써 ‘환자’의 행동을 이상한 것으로 주조해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자가 찾아간 ‘빙의 치료사’들도 모두 필자가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치료’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답을 가지고 있으며 내담자가 자신의 증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변수가 되지 않는다. 그때마다 ‘정신병원’이 공포의 대상으로 연행되었다. 정신병원이야말로 치료를 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마련된 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레토릭은 분명 부적절하다. 하지만 정신병원 역시 증상이 왜 일어나며 어떻게 해야 완치될 수 있는지 합리적인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빙의 치료사들이 정신병원 입원을 ‘최후의 사태’로 언급하는 것에도 일리가 있다. 제도권의 치료사들 역시 환자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광기는 환자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므로 인신을 구속하여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다시 말해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타자의 의지에 얼마가 될지 모르는 시간을 맡기는 것이다. 여기서 섣부른 감정적 기대는 배제된다. 반면에 빙의 치료사들은 단번에 원인을 파악하고 단번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치료를 미룰 경우의 위험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감정은 더욱 극적인 것이 된다. 본래 기복신앙을 믿으며 달리 증상을 고찰할 방법이 없는 사람이라면 판단을 유보하고 여기에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복신앙은 한국에 뿌리내린 모든 외래 종교에 파고들어 있다. 빙의를 치료한다는 이들에게 어떠한 증상이 정신질환으로 여겨지는지는 중요치 않다. 우울증, 불면증, 정신분열증 모두에 들어맞는 하나의 설명모델이 빙의이며 약이 안 듣거나 부작용이 심할 경우 대안으로 영적인 치료를 권하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신질환과 빙의를 엄격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고도 한다. 이러한 시도는 주로 성경에 따라 마귀들림을 인정하고 있는 기독교계에서 나타난다. 기독교의 사제들이 미신과 구별되는 현대종교를 자처하면서 과학적으로 여겨지는 설명모델과 공존하려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4. 빙의와 정신질환의 구분은 가능한가?
일부 빙의 치료자들은 빙의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의료적으로 ‘빙의’에 대응하는 정신질환은 정신의학 분류체계인 DSM-IV에서 질병코드 F44로 분류된 ‘해리 장애(전환 장애)’이다. 특히 소분류인 F44.3은 ‘몽환상태와 빙의증’으로 문화적 요인이 끼치는 영향이 커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사회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2002년 WHO는 이 증상의 치료법으로 최면치료와 ‘영적 치료’를 인정했다. 그러나 환자가 ‘죽은 사람의 혼이 빙의됐다’고 생각하거나 일시적인 기억상실 혹은 의식불명상태를 보이지 않는 이상 해리 장애보다는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는 빈도가 높다. 정신분열증의 주 증상은 환각과 망상, 사회적 기능의 저하이다. 또한 해리 장애는 시간이 지나면 대개 좋아지지만 정신분열증은 예후가 좋지 않고 재발이 잦아 지속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환청을 듣고 사람을 죽였다는 정신병력자의 살인 사건이 자주 보도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경계 분위기가 조성되어 귀신을 본다거나 목소리를 듣는 등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으로 많이 줄어든 상태다. 2000년대만 해도 가수들이 음반 녹음 중에 귀신 소리를 들으면 대박이 난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져 있었으나 오늘날 그런 일이 보도된다면 정신질환은 아닌지 걱정하는 팬들이 생겨날 것이다.
George M. Foster는 비서구 의료체계를 분석하면서 질환의 원인을 파악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인격적인(personalistic) 것과 자연적인(naturalistic) 것이 있다고 했다. 빙의를 일반적인 질환의 하나로 보자면 원한 있는 영가들이 통증과 이상 행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인격적인 설명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격적인 요인은 자연적인 요인보다도 더 원시적인 사회에서 주로 나타나는 질환 설명모델이다. 그러나 의료적으로 진단이 나오지 않거나 의료적 조치가 불충분한 경우가 남아 있기에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일부 인격적인 설명모델을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신앙에서 말하는 ‘한 맺힌 영혼’이라는 설명모델 외에 기독교에서는 성경 가르침에 따른 마귀의 습격을 인정하지만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적용시켜 의료체계를 교란시키지 않고자 한다. 일반적으로는 마귀들림 현상을 정신질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귀들린 것일지도 모르는 자가 정신의학의 처방을 따를 때 의사가 환자의 종교적 신념 자체를 질환의 원인요소로 여기고 배척하려는 데는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안석, 2011). 빙의라는 개념이 환자들을 ‘피해자’ 혹은 ‘희생양’으로 보기 때문에 피해망상을 가중시키고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현지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Ethan Watters는 잔지바르의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관찰하면서 이들이 아무 죄 없이 악령에게 지배당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마을공동체 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뇌 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일어난다는 생물학적 설명모델을 받아들이는 것이 비록 ‘교양 있는’ 사람의 요건으로 여겨질지라도 그것이 편견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Watters가 인용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물학적 설명모델의 지지자들은 오히려 정신질환자를 가장 ‘정상인들로부터’ 떼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빙의라는 종교적 설명모델은 피치료자의 믿음에 의지하고 과학을 도외시하는 등 미심쩍은데다가 치료비용 역시 불투명하다. 필자가 연락을 취한 세 ‘빙의 치료사’ 중 한 명은 30만원을, 한 명은 500만원을 불렀으며 다른 한 명은 끝까지 비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 받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막막한 감정을 해소하는 데 매뉴얼만 따르고 격리도 마다 않는 정신의학적 치료법은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거라 짐작 가능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담과 각종 심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의료인들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서는 질환의 원인을 인간관계나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찾는 등 ‘인격적인’ 요인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약이 듣지 않는다는 당사자의 불만이 빙의 치료를 찾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정신의학의 질환 설명모델은 아직껏 불완전하며 뇌에 화학적 불균형이 있을 거라 추정할 뿐 화학물질의 수치를 검사하는 절차조차도 생략한 채 진단을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양을 조정하지만 특정 신경전달물질을 질환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도 임상시험으로 입증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정신의학은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증상을 임의로 분류해 취급하므로 정작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해소되지 않고 정신활동이 둔해지는 등 부작용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때 환자가 약에 대해 갖는 반감을 무시하고 처방을 조절하지 않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라는 관점을 고수한다면 의사와 환자 간에 신뢰가 쌓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듯 손상된 감정은 비과학적으로 여겨지는 대안에 관심을 갖게 하는 동기가 될 소지가 있다.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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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an Watters, Crazy Like Us: The Globalization of the American Psyche (김한영 역,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아카이브, 2011.), 2011.
Michel de Certeau, (이충민 역, 루됭의 마귀들림, 문학동네, 2013.),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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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심화, “빙의 그 세 번째 이야기”, 찬섬, 2005.
묘심화, “빙의”, 찬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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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석, “귀신들림인가 정신장애인가”, 신학논단 제63집 pp.121-150,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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