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꿈을 기록하고 싶다. 요 며칠 아침마다 정신이 들어도 팔을 움직이거나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꿈이 엄청나게 큰 힘으로 나를 잡아두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다시 꿈의 의지 아래 복속되고 만다. 꿈에도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 무의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무지의 소산이었다. 내 꿈에서는 몇 가지 테마가 반복되고 가끔 나는 그것들을 환기해보지만 밤에는 힘들다. 대체로 밤이 되면 정신활동이든 신체 컨디션이든 둔화된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아침에도 개운한 것은 아니니 그나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되는 셈이다. 밖에 나가 있으면 조금 낫지만 더이상 일부러 나가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오늘은 병원에 가 약 열흘 만에 TMS를 받았다. 아침에 몸이 굳고 저린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더니 의사는 너무 광범위한 증상이라 어떻게 정의를 못 내리겠다고 했다. 그는 호인이지만 진료를 잘 보는 편은 아니다. 나는 확실히 명명된 진단 없이 장기간 TMS를 받고 있는데 그외에 별달리 병원에서 얻는 도움 같은 것은 없다 해야 할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파도손에 가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오랜만이라 카페인빨이 잘 들었던 것인지 H의 말대로 그 커피가 유독 카페인 함유량이 많았던 것인지 굉장히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기분까지 업되고 좋아졌다. 프림 설탕을 전혀 첨가하지 않은 인스턴트 커피일 뿐이었는데도 맛이 좋았다. (혹은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그날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역시 몸이 원하는 것을 섭취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몸에 좋다는 믿음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날 알라딘 커피를 배송받아서 일요일부터는 집에서 아침마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잠드는 일은 사라졌지만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오늘 꾼 꿈의 기억은 화장실 영화제에서 시작한다. 화장실은 이전에도 꿈에 한두 번 나온 적 있다. 오늘 아침에 깬 후 잠시 동안 성폭행 혐의로 고소되었던 모 연예인의 화장실 페티시에 대해 생각했다. 전에 꾼 화장실 꿈은 악몽에 가까웠는데, 오늘은 굉장히 깔끔하게 단장된 화장실이 나왔다. 화장실에서 대체 영화제를 왜 하냐는 내부 비판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우리 화장실이 화장실답지 않게 깔끔하고 미적으로 세련되었다는 점을 홍보하면서, 1인1실의 밀실에서 아늑하게 자기만의 영화감상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같은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누가 덧붙이고 있었다. 진심은 아니고 얼마간은 농담 같았다. 나는 거기서 나와 관리인 같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였다. 음식 재료의 처리나 비용 문제였을 텐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단체 여행을 오는 꿈을 작년에도 여러 번 꾸었다. 계속 생각해보니 오늘 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나 그저께 꿈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어제는 다락방의 문을 열고 좁은 틈에 들어가 유산이 있는 방의 열쇠를 가져오는 꿈을 꿨다. 높은 곳의 좁은 입구에 간신히 들어가는 꿈은 전에도 몇 번이나 꾼 것이다. 깨기 직전에는 안경을 고르다 실리콘 같은 것으로 안경 다리를 볼에 부착시켜 착용하는 타입의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칠 만원을 주고 그것을 샀다. "미쳤냐"는 말이 마음에서 확실하게 울렸다. 시착을 해보려 하니 갑자기 볼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는 처음 피팅은 편안했지만 다시 써보니 도저히 불편해서 쓸 수가 없어 환불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말로는 일부만 지불할 테니 나머지 금액을 돌려달라고 말했는데 전부 다 돌려받을 수 있었다. "왜 여기는 깔끔한 게 없냐"란 말을 들으면서 다른 안경을 집었지만 "그건 조금 다른 거"라는 말이 들리더니 그 안경은 얼굴의 입 바로 위까지를 덮는 가면 형태의 장신구로 변해버렸다.
이 날 꿈에서는 한 화면이 9컷 정도로 나누어진 만화들도 보았다. 연재 웹툰을 골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평가를 하면서 괜찮아뵈는 것을 찾아 들어갔지만 문득 G의 그림체로 그려진 것을 보았다. (연재 웹툰은 아니었고 불현듯 눈앞에 떠오른 것이었다.) 왜가리가 돈이 없어서 횟감으로 자기 팔(날개?)을 팔고('왜가리회'라는 말을 확실하게 보았다.) 기계팔로 그것을 대체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렇게 대체한 기계팔이 잘 작동되지 않아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만화의 세계관에서는 고기가 귀하고 기계로 신체 일부를 대체하는 것이 권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사회적 약자들을 실험대상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진짜 목적은 허울 좋은 광고 때문에 밝혀지지 않았다. 이 모든 내용은 담담한 구어체의 회고적 독백으로 컷의 윗부분에 적혀 있었다. 아침에 깨서는 은하철도999나 고슴도치 소닉 같은 '기계몸'이 나오는 만화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적 보기에 그것들은 소름끼쳤다. 성인이 되고도 가끔 그것들을 생각했다. 소닉의 경우 위키에서 여러 번 검색해 읽어보기도 했다. 기계가 된 동물들이 나중에 진짜 몸을 되찾았는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그저께 꿈에도 팔을 못쓰는 실험체가 나왔다. 장난감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면서 나는 손에 힘이 빠져 쥐고 있던 동전을 가게 앞에 세워진 쓰레기 봉지 안에 떨어뜨렸다. 엄마로 추정되는 동행자가 핀잔을 주었다. 가게의 협조를 얻어 동전을 다시 꺼냈더니 원래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은 동전이 나왔다. 그런데 일부는 진짜 동전이 아니었고 숫자가 써있었는데 그것은 수표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했다. 가게 안에서는 그 수표를 받고 실험에 참가했지만 '중독장애'로 한동안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남자를 만났다. 처음에는 라틴계처럼 보이는 큰 이목구비에 어두운 피부색의 어린아이를 보았지만 화면이 바뀌고 피부가 희며 턱이 뾰족하고 눈이 가는 마른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중에 이명박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조금 닮았을지는 몰라도 이명박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실험조건에 속아 팔을 못쓰게 된 남자의 분노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내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팔이 저리고 굳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실제로 내가 본 것은 다리를 잘 못 써서 목발을 쓰는지 한 발로 겅중겅중 뛰어오던 안경 쓴 길쭉한 인상의 남자다. 나는 작년에 그를 한번 홈플러스쪽 정류장에서 보았다. 그는 약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를 한번 더 본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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